세상 끝의 골목들 쇳물처럼 새벽 출정 봄비 내리는 날 매향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46
방현석.김한수 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에 정화진 작가의 <쇳물처럼>이라는 작품에 대해 듣게 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거대한 함성이 온 사회를 넘실거리던 바로 그 해에 나온 작품이다. 국가주도 산업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도전하고, 시민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주인이라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퇴근하자마자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전자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여전히 우리나라 공공시스템의 안정성은 정말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인천의 어느 주물공장이다. 작가는 타자화된 시점으로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때는 김장철, 모두가 김장 보너스를 기대하지만 그들이 생업터전인 <태양주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10%를 넘는 불량률을 이유로 들면서, 늬들이 그러고서도 보너스를 달라고 할 수 있냐고 회사의 대변인으로 등장하는 전 상무는 칠성이에게 퉁바리로 모욕한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미약했다.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의 유부남들보다 좀 더 자유로운 총각들이 뭉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무슨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등장이 아니라 왜 우리가 이런 처우를 받으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절절한 자각이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선배 노동자들의 시선은 오늘날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냉혹한 노노대결의 그것이 아닌 서로를 품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하나가 된 태양주물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힘의 위력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도가니에서 녹은 쇳물처럼 하나가 된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일지도 모르는 천 씨는 현장에서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리더십을 발휘한다. 사측이 양보를 하게 된 배경에는 어쩌면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입게 될 어마어마한 물적 손해가 그들의 이탈한 이성을 바로 잡아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임금 노동자들을 자극해서 과연 그들이 얻는 게 무엇이겠는가? 당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노사협상의 원형질을 단편 <쇳물처럼>은 보여준다.

탄광에서 잔뼈가 굵은 천 씨는 규폐나 막장사고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 탈출하지만, 탄가루와의 연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주물공장에 터전을 잡았고 정당한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나 하는 그런 복잡한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천 씨는 연전에 칠성이의 보너스 요구사건 이래 그네들이 어떤 움직임을 하고 있는 알았을까? 11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거대한 바위의 밑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자신의 ‘권리’라는 쇳덩어리를 녹이기 위해 그들은 준비를 마친 것이다.

작가는 어찌 보면 지극하게 평범한 밥벌이를 매개로 일상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처자식을 벌어 먹이겠다는 인간 본능 때문에 억눌러왔던 이성이 폭발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어쩌면 극한으로 치닫을 수 있는 순간, 천 씨의 한 마디로 그들은 연대의 중요성에 도달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의 힘이 아닌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 말이다.

치열한 대립은 대폿집으로 향하는 천 씨 부자의 훈훈한 광경으로 마무리된다. 아들에게 직접 대폿집 문을 열라는 천 씨의 말은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될 미래의 후손에 대한 희망으로 읽힌다. 한 세대 전의 그런 빛나는 희망이 지금 어떻게 왜곡이 되었는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도 글을 쓰게 된다면 이런 시대정신이 담긴 글을 쓰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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