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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등장으로부터 책으로 엮여 나오기까지 또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라는 다소 긴 제목의 소설집의 주인공 조현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우리 문학계에서 성골로 지칭되는 소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다. 어떤 작가는 그런 게 뭐냐고 폄하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문단으로 가는 비상구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조현 작가는 2008년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에 두 번째로 실린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라는 학술 논문 제목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소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팩션 장르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중간 어느 쯤에 비스듬하게 걸쳐 있는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타이틀 소설의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됐을 정도로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평론에서 소설은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성적 반성을 통한 성찰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조현 작가의 작품은 독자에게 다양한 성찰을 강요한다. 그래서 첫 번째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마이클 햄버거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아니 이럴 수가! 첫 페이지에서부터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실제 마이클 햄버거는 1924년생인데, 작가는 당당하게 그가 1925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시작에서부터 비틀린 작가의 팩션이 등장하는 건가? 당황스럽다.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마이클 햄버거의 시가 단지 “햄버거”라는 이름 때문에 세계적인 햄버거 브랜드 맥도날드의 마케팅 전략의 일부분으로 연착륙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주한미국 커닝스 주니어의 손을 거쳐 한국 맥도날드 지사가 개발한 햄버거를 사면 시를 끼워 준다는 “착한 소비”의 첨병이 되는 마이클 햄버거의 시 이야기는 참 기발했다. 정크 푸드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는 식품 햄버거가 문학과 만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작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자유로운 상상력을 대변한다.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한술 더 뜬다. 학술 논문의 제목을 뺨칠 만한 제목의 뻔뻔한 차용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종이 냅킨에 대한 작가의 일고찰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문제는 그 종이 냅킨을 소비하던 주체인 인류가 멸망한 다음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게 이런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목성의 위성이라는 가니메데에서 왔다는 ‘외계소녀’를 사랑한 청년의 이야기에서는 <크라잉 게임>만큼이나 생목오르는 극적인 반전이 독자를 기다린다. 정상과 다른 이들은 우리에게 어쩌면 그렇게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초능력을 배우는 과정에서 남이 게워낸 토사물을 먹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허구와 실재의 조합만큼이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로르샤흐 테스트 이야기도 어렵기만 하다. 다 읽고 나서 ‘내가 뭘 읽었나?’하게 만드는 그런 케이오스 뿐이다.
역시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의 책답게 아직 이렇다 저렇다 할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 않나 싶다. 하지만, 팩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독자의 성찰을 촉구하는 조현 작가의 스타일 하나만큼은 만족스럽다. 순문학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넘실거릴 수 있는 문학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