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쓰레기통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고 했던가? 굳이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나 원효대사의 유심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은 경우는 많다. 그렇다면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공간적 구속이 따르는 징역살이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내 청춘의 감옥>의 저자인 이건범 씨는 바로 그 징역살이를 버텨낸 힘의 원천을 자신이 발굴한 생명의 힘, 웃음에서 찾는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80년대, 대학생이었던 글쓴이 역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었나 보다. 행동하는 양심은 개헌 요구를 하다가 구속수감이 되었고, 그 후 노동운동을 하다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본격적인 징역을 살게 된다. 이 책은 이건범 씨의 육필 징역 체험수기다. 인간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건범 씨가 책에서는 위트와 유머를 섞어 부드럽게 표현한 신체적 구속의 괴로움을 알지 못하리라. 사회와 단절되어 자유로운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징역살이의 대표적 고통일 것이다.

신체적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아마도 먹는 즐거움이리라.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교도소에서 배급되고 영치금으로 구입이 가능한 음식재료로 사제 같은 맛을 추구하는 요리 배틀이 정겹다. 명절은 특히나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특히 괴로운 시간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이지만, 늘 시간이 넘쳐 나는 이들에게는 쉬는 것이 더 어려울 일일 게다. 긴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직접 그린 화투로 고스톱을 치는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마냥 그렇게 놀고먹는 것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건범 씨만 하더라도, 연단의 시간에 스스로 갈고 닦아 출소한 뒤에 징역살이에서 배운 영어가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수갑 차고 이십 대를 보낸 작가는 ‘운동권 전과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기획자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호사다마라고 잘 나가던 회사는 12년 만에 파산하고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1급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징역살이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성한 사람도 버겁다는 출판 기획자로 거듭났다.

술과 나이(세월)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24년의 세월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오가며 팔색조와 같이 화려한 변신을 하는 이들에게도 작가로 하여금 관대한 시선을 갖게 하여 주었나 보다. 청년 시절 품었던 사회개조의 꿈은 민주적 방식과 절차대로 행하는 것이 옳다는 돈오의 순간으로 이끈다. 청년 때는 스스로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만 앞세웠던 게 아닐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짧은 행복의 기억이야말로 고통을 이겨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울러 치열한 현실과 오랜 시간 속에서 녹아든 깨달음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감옥에 갇힌 정치범은 이래야 한다는 전형적 사고의 틀에 이건범 씨는 ‘가벼움’으로 맞선다. 주간지와 여성지를 감방 동료끼리 돌려 보고, 기약 없는 무기형을 사는 동료를 위해 과자 꾸러미를 아낌없이 푸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께에 출간될 또 다른 작품의 주제는 “파산”이란다. 어느 작가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는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건범 씨도 그와 비슷한 길을 가는 걸까. 끊임없는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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