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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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하면 역시 서태지다. 최근에 비밀결혼과 이혼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가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 <컴백홈>은 그렇게 서태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황시운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으로 어쩌면 자신의 우상이었을지도 모를 그런 가수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창비장편소설상이라는 타이틀에 빛나는 <컴백홈>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녀 박유미 양이다. 이름 한 번 빼어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앳된 소녀의 과체중이다. 0.1톤을 한참 웃도는 주인공의 육중한 몸무게는 고통의 원천이자 세상으로부터 소외의 주범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 음식에 탐닉하고 주체할 수 없는 폭식의 나락에 빠져든 걸까?

지금도 그런 진 모르겠지만 한 때 시대정신의 선두주자였던 아티스트 서태지와 얽힌 운명의 끈이 있다고 유미는 굳게 믿는다. 기성세대의 간섭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한 선구자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서태지의 그런 도전정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유미는 언젠가 그와 함께 달나라로 갈 꿈을 꾼다. 놀랍군! 그런데 그러기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선행조건이 있으니 그건 바로 다이어트 성공이다.

유미의 육중한 몸매는 학교에서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잔혹한 별명과 함께 공식 왕따로 늘상 얻어터지고 삥을 뜯긴다. 게다가 그녀를 괴롭히는 일진 짱 지은은 유미가 인정하는 유일한 친구다.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돈벌이 전선에 나서고, 상대적으로 자식에게 무심한 가정환경도 빼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 가정의 모든 단면이 유미네 집구석이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미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보통 사람이 되는 고행에 나선다. 폭식과 거식의 반복을 통해 자발적 거식증 환자로 되기로 작정하고 프로아나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폭식의 아름다운 추억을 아는 유미가 쉽사리 프로아나가 되기는 쉽지 않다. 끝없이 계속되는 음식의 유혹을 참아 가면서, 고통스러운 폭토의 과정을 겪는 유미가 그저 애처로울 따름이다. 한편, 유미를 괴롭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편이 되준 지은이 어느 날 갑자기 미혼모가 되어 종적을 감춘다. 사정도 모르고 호스로 자신을 사정없이 내치는 엄마를 “까고” 가출한 유미는 지은을 찾아가 엄마가 되어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의 변신에 혼란을 느낀다.

<컴백홈>에는 정말 21세기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음직한 모든 문제가 줄줄이 쏘시지처럼 달려나온다. 집에서도 친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인 유미는 오로지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게서 위로를 받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음악조차도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무장한 상업 아티스트가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는 그 아티스트가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가정이 흔들리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인 경제 문제에는 해답이 없다. 실업이 곧 생존을 위협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자영업자로 내몰리는 가장의 선택지는 너무나 좁게 느껴진다. 어쩌면 자식에게까지 철저하게 무관심한 유미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딸이 가출했는데,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은 그의 무심함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사실 유미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지고 보면, 유미네 엄마도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둥지의 김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새끼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종자라니 어쩌겠는가.

‘돌진하는 이야기꾼’이라는 황시운 작가는 독자에게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 묻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양아치, 날라리가 되기 위해서도 기본은 받쳐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성공의 사다리를 악착같이 기어오르기 위해 내면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외모라는 외적인 요인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초상에 급소를 찌르는 포복절도에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골계미를 추구하면서도 냉정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작가의 냉정함이랄까?

백문이 무소용이다. 직접 읽어 보고, 작가의 맹랑한 글쓰기를 몸소 체험해 보라. 스포일이 될까 봐 소심하게 적지 못한 구구절절한 잔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5월의 마지막 날에 만난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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