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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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전처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역시 읽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고전 중의 하나였다. 최근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제인 에어>의 개봉으로 새로이 그녀의 원작이 주목을 받게 됐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 대한 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 읽게 된 원작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 <제인 에어>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나 제인 에어다. 열 살배기 꼬마 숙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외숙모 새러 리드 부인과 세 명의 사촌형제의 구박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제인이 사는 게이츠헤드 장에서의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어린 제인과 리드 부인의 불화는 제인의 외숙부가 유언으로 남긴 제인의 후견부탁에서 비롯됐다. 제인은 리드 부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촌 존 리드와 한판 싸웠다가 혹독한 벌을 받기도 한다.

어린 제인은 결국 게이츠헤드 장을 떠나 로우드 학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지만, 그곳의 환경 역시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리드 부인으로부터 제인에 대해 좋지 않은 정보를 들은 로우드 학교의 운영자인 브로클허스트 씨는 제인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외톨이 친구 헬렌 번스를 만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발진티푸스가 대유행을 하면서 제인은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헬렌을 잃는다.

로우드 자선원 학교에서 6년은 학생으로 그리고 나머지 2년은 선생으로 지내면서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교육이라는 무기를 얻은 제인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다. 가정교사 광고를 통해 로우드 학교를 떠나 손필드 장에서 프랑스 꼬마 아델 바렝을 가르치게 된 제인. 손필드 장의 주인인 로체스터 씨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역경을 딛고 자주적인 인간형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손필드 장의 숨겨진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평범한 인생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바뀌는 극적인 전환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샬럿 브론테는 영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단면을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부모 없는 아이가 홀로 성장하기에 부르주아지 사회가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지, 부르주아지의 자선으로 운영되는 자선원 학교에서의 간소하고 소박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작가는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리드 부인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제인은 로우드 학교에서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진취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제인 에어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사랑을 찾게 되는 손필드 장의 생활을 통해 그녀는 재산과 계급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녀의 고용인이자 주인인 로체스터가 어울리는 상류계급 인사들은 가정교사인 제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장면은 이를 방증한다.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제외한다면 교양이나 프랑스어 실력에서 제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소위 숙녀들에 대한 위선과 허영을 샬럿 브론테는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비록 고용인와 피고용인의 관계였지만 로체스터 씨에게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제인의 모습은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아 소녀가 부자 주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연애담은 손필드 장에서 로체스터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손님으로 찾아온 리처드 메이슨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건을 거치면서 미스터리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제인은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던 손필드 장에 숨겨진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지만, 그 비밀로부터 따돌림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던 제인 에어가 무서운 인상과 묘한 표정의 주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변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미묘하게 바뀌는 제인이 느끼는 감정의 추이변화를 예리하게 짚어낸 묘사는 특히 일품이었다.

희비극을 오가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이 연애소설에서 샬럿 브론테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여성상을 창조해냈다. 특출난 외모도, 유복한 부모가 물려준 유산도 없이 위기마다 자력갱생하는 주인공 제인은 아무리 “슬프고 외로워도” 울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게 맞선다. 남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과연 이런 여성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당찬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저 그런 고전 스타일의 연애소설이겠지 하는 나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샬럿 브론테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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