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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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을 좋아한다. 루이스 세풀베다, 로베르토 볼라뇨 그리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전작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라틴문학으로 꼽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읽으려고 몇 년 전에 사서 서가에 꽂아 두었지만 선 듯 손이 가지 않았다. 그동안에 헥터 바벤코 감독이 연출을 맡고 라울 줄리아와 윌리엄 허트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도 봤지만, 원작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올해 첫날 처음으로 읽은 책이 됐다.

문학으로 출발한 이름부터 매력적인 <거미여인의 키스>는 영화는 물론이고 뮤지컬 그리고 연극에 이르는 장르 이종교배의 전범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감방에 갇힌 두 사나이(발렌틴과 몰리나)의 이야기가 참 연극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 바네사 윌리엄스가 타이틀롤을 맡은 뮤지컬로도 상연이 됐다고 하는데, 연극과 뮤지컬 모두 한번 보고 싶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힌 몰리나가 유물론자이자 마르크시스트 게릴라 투사인 발렌틴에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오래전에 본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구성을 따른다. 문제는 이 두 사나이의 성적 정체성이다. 몰리나는 전직 디스플레이어이자 게이로 예민한 감수성을 자랑한다. 그래서 그는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속의 정말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훌륭하게 묘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머리 스타일은 물론이고, 건물의 특성까지 놓치지 않고 청자인 발렌틴에게 전달한다.

한편,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아르헨티나에서 사회혁명을 꿈꾸던 혁명가 발렌틴은 투옥생활 중에 나태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며 책읽기와 공부에 전념한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한 영화 이야기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 몰리나에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발렌틴은 그저 망상에 빠진 개자식일 뿐이다. 그래서 정작 그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작품에서 평행을 달리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마누엘 푸익은 소설 속 영화에 등장하는 표범여인, 좀비여인 그리고 거미여인으로 대변되는 신화의 탈주술을 시도한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몰리나의 성적 취향처럼 정상적이지 못하다. 키스하면 매력적인 여자가 표범으로 변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부두교의 주술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뺨치는 좀비여인 이야기 그리고 거미줄로 남자를 옭아매는 팜므 파탈의 전형 거미여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실타래처럼 엉킨 변형된 성적 코드의 해석이 난무한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의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몰리나의 동성애 취향에 발렌틴은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주술적 사랑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면서 감방 동료 간의 동지애를 넘어선 금지된 사랑으로 전진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프로이트와 마르쿠제 같은 심리학자의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설명은 다른 두 영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치성과 대척을 이룬다.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에서 나치즘에 경도되는 여주인공은 탐미주의적 경향을 가진 몰리나의 페르소나였을까? 사회주의자 발렌틴은 나치즘의 선전물이라고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를 깎아내리지만, 몰리나는 영화의 정치성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남미의 부유한 바나나 농장주의 아들로 유럽에서 공부하던 주인공이 게릴라 투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에서도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냐 아니면 사회적 책임이 우선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을 거듭한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통을 원하지만, 보통 사람과 그런 소통을 경험해 보지 못한 몰리나는 생래적으로 그런 발렌틴의 시도를 거부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몰리나를 이해하게 된 발렌틴은 가석방을 앞둔 몰리나에게 (성적) 약자로서의 삶에서 탈피하라는 조언을 해준다. 결혼조차도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적 알고리즘으로 파악하는 유물론자의 사랑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게릴라 집단이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몽상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그런 투쟁이 뭐냐고 묻는 몰리나가 어쩌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가 실재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몰리나의 상상 속에서 빚어진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몰리나는 중요한 부분에서 계속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시간을 벌고, 그 짧은 사이에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은 아니었을까? 몰리나는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의 간호를 위한 가석방의 도구로 거미여인처럼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거미줄로 발렌틴을 옭아맨 게 아니었을까? 그것은 마치 탈주술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술적 사랑에 빠져 자기 파멸의 길에 들어선 자아의 모습으로 치환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영화 버전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 영화를 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책읽기를 통해 보충하고 싶다고나 할까. 새해 처음으로 읽는 책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랑은 바로 그런 거야.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 <거미여인의 키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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