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놀랍다. 연휴의 끄트머리에 그저 잠들기 전에 몇 장 읽겠다고 펼쳐든 김장환 작가의 <굿바이, 욘더>는 이백 몇 장을 읽고서야 간신히 잠들 수가 있었다. 도대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 마력적인 흡입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기계문명이 확실하게 더 발전할 미래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어쩌면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거의 확신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소설은 독특한 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결국 일찌감치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아내 차이후를 떠나보낸 전문 인터뷰어 김홀의 상념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대개의 사람처럼 김홀은 상실감에 근 2년간 폐인생활을 한다. 사이버네틱 스페이스가 발전해서 기계적 인터페이스로 소통하고,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가 넘실거리지만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이라는 원시시대 이래 인류에게 주어진 형벌은(아니 어쩌면 축복이던가) 오롯하게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김홀은 돈오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다. 반미래학을 주장하는 장진호 박사와 인터뷰하면서. 원시시대의 신화는 변이의 과정을 통해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그만큼 불멸이라는 주제는 매혹적이니까 말이다. 그러다 죽은 아내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게 된다. 두 사건의 순서가 바뀌었나?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아니 어떻게 죽은 아내가 나한테 메일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기술이 놀랍게 발전된 사회의 스팸쯤으로 생각하려던 김홀은 아내가 죽기 전에 자신의 기억들을 메모리칩에 이식해서, 바이앤바이(by and by)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정도로는 아직 약하다고? 이제 겨우 시작이다 기대할지라.

상상을 초월하는 브레인 다운로드라는 신기술로 망자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 단순하게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육신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욘더”라는 세계가 탄생한다. 선사시대 이래 인간이 꿈꿔온 영생불멸이 상상을 무대로 한 유비쿼터스 시대에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인간은 육신이라는 물적 토대 대신 불멸을 선택했는데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행복은 불안이라는 상대적 요소가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욘더에서 아내 이후와 존재를 몰랐던 자신의 아이 지효와 대면한 김홀은 감미로운 허구에 마냥 행복해한다. 하지만, 과연 행복할까? 사시사철 좋은 날씨에,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5분에서 10분 이상 기다리지 않고 끔찍한 교통 트래픽이 없는 그런 지상천국 같은 패러다이스가 왜 싫단 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김장환 작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희미한 실체를 슬쩍 드러내 보인다. 어디에서도, 심지어 천국에서도 만족할 수 없었노라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설정에 저 멀리 도피안의 세계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굿바이, 욘더>를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할까? SF 공상과학? 판타지? 아니면 치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스릴러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인간은 하이테크 시대를 살면서도 꾸준하게 로우테크 기술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나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빛을 담으려는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한 휴대전화가 마냥 편리하기만 한 걸까? 아날로그 시대에도 휴대전화 없이도 잘만 만나고, 연애하고 소통하지 않았던가. 문명의 이기라는 편리함으로 감춰진 채, 유비쿼터스 공간에 점점 종속되어가는 현실은 굳이 외면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에 씁쓸해졌다.

중반의 놀라운 동력에 비해 소설의 결말은 아쉬웠다. 그간의 내공을 미루어 보아 좀 더 화끈한 엔딩을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후속편을 예비한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까지 도달했다. 너무 영화를 자주 본 모양이다, 정신 차리자! 책의 끝자락에 생소한 여러 용어를 아주 친절하게 나열해 줬지만 정작 내가 궁금해하던 “유비쿼터스”는 빠져 있어서 실망했다. 무식한 독자는 천상 인터넷으로 유비쿼터스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했다.

불쑥 소설에 등장하는 욘더(yonder)는 천국(heaven)이 아니라 불안한 현대인의 정신적 피난처(haven)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번역을 해온 작가의 미래 디스토피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긴 SF 데뷔작은 세이렌의 유혹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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