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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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요사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개인의 저항과 봉기 그리고 패배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묘사”로 꼽았는데, 현재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 중에서 이번에 나온 <염소의 축제>야말로 이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뉴욕타임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수상 소식을 다루면서, <세상 종말 전쟁>과 <염소의 축제>를 대표작으로 꼽았는데 후자는 31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철권통치한 엘 헤페(El Hefe)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몰리나의 몰락을 그린 독재자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주노 디아스도 자신의 출세작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희대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악몽 같은 독재를 다루고 있다.

모두 24개의 장으로 구성된 <염소의 축제>는 1961년 5월 30일 화요일, 31년 동안 도미니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총통 라파엘 트루히요 저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의 주인공 우라니아 카브랄의 자기 고백이라는 소설적 허구를 추가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35년간 조국 도미니카를 떠나 미국에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인 우라니아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찾아 고통스러웠던 트루히요 시절을 떠올린다. 하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외동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서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가 없다.

이 첫 번째 화소(話素)에 이어, 두 번째로는 독재자 트루히요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플래시백이 등장한다. 허수아비 대통령 발라게르 박사를 내세워, 공화국의 새로운 아버지로 평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이웃 아이티와의 국경분쟁을 말끔하게 해결한 지도자 트루히요는 국민으로부터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트루히요 통치에 대한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8년간의 미국 점령기간 동안, 미 해병대로부터 교육을 받은 트루히요는 청결함, 건강한 육체 그리고 의상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독재자로 도미니카에 군림한다. 조니 아베스 가르시아 대령이 이끄는 비밀첩보부대로 공포정치를 통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적 암살은 물론 산 채로 바다에 상어 밥으로 던지는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는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염소”는 바로 이런 트루히요를 지칭하는 말로, 독재자는 자신 각료들의 부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딸도 성적 노리갯감으로 이용하는 파렴치한이다. 트루히요 체제의 수호자들조차도 이런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필연적으로 반체제 행동에 나서게 된다. 우라니아, 트루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루히요 독재를 끝장내기 위해 그를 암살하려는 일단의 비밀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로테이션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염소의 축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 초반 도미니카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쿠바혁명군의 침공기도, 무차별적인 인권유린에 대한 가톨릭의 반발, 로물로 베탕쿠르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로 미주기구(OAS)의 경제 제재 조치가 이어지면서 트루히요 정권은 사면초가에 몰린다. 우라니아의 아버지 ‘지식인’ 아구스틴, 음모가이고 ‘걸어다니는 오물덩어리’라 불리지만 탁월한 책략가인 헨리 치리노스 의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라게르 박사가 트루히요 체제를 유지하는 트로이카로 활약하지만,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친 독재로 말미암은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종결부에 가서 밝혀지는 우라니아의 트라우마는 트루히요 시절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마초 같이 도미니카를 폭력적으로 지배한 독재자였던 ‘엘 헤페’의 실체는 발정 난 늙은 염소에 지나지 않았다고 우라니아는 가족들에게 폭로한다. 암살 공모자들이 트루히요를 성공적으로 암살하고 나서, 조직적인 사후처리를 하지 못하면서 트루히요주의자들에게 보복당하는 장면에서는 그들도 결국엔 트루히요 통치의 공모자였다는 자조적인 자기 고백에 도달한다. 이렇게 개인적 수치와 트라우마는 주노 디아스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트루히요의 독재라는 마법이 해제되고 나서도 여전히 수많은 도미니카 사람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들 역시 죽은 염소의 희생제물이었던 것이다. 독재자의 죽음 후의 탈주술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도미니카의 진짜 비극은, 국가에서 가장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은 결국 염소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작가는 증언한다. 더 끔찍한 일은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트루히요가 박탈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국가의 돌멩이 하나까지 소모사 일가의 것이 아닌 것이 없었다는 니카라과처럼 트루히요 일가 역시 도미니카를 온전하게 소유했다. 그래서 트루히요 체제에 대한 부역혐의에 대해 망명자들과 죽은 이들만이 자유롭다고 했던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일찍이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좋은 소설은 주제와 형식이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글쓰기의 전범을 확립한 저자는 <염소의 축제>에서 화자-서술공간-서술시간이라는 소설구성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트루히요의 암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7인의 ‘처형자’들의 활약과 그들의 영웅적인 최후 그리고 우라니아 개인의 치유와 화해를 이끌어낸다. 중첩된 플래시백 기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저항할 수 없는 설득력을 확보하는 작가로서의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에서 최고라는 글쓰기 하는 삶을 살아온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은 아마도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절판된 그의 저작들이 이번 기회를 빌려 계속해서 출간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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