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 The Hurt Lock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리뷰를 하기에 앞서 솔직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은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서 말하는 대로 “전 세계를 전율시킨 위대한 걸작”급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으로 연출을 맡은 캐서린 비글로우가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문제작 <허트 로커>를 이제야 보게 됐다.

70년대 월남전이 미국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고, 영화소재로 줄창 우려먹게 했다면 새로운 천년에 비슷한 역할을 이라크 전쟁이 맡게 됐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명분도 없는 비도적적인 전쟁의 발단과 원인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허트 로커>에서는 그렇게 이라크에 파견된 폭발물 처리반에 대한 일상을 그린다.

최첨단 시대의 전쟁답게, 군인이 직접 폭발물에 접근하지 않고 로봇을 사용해서 폭발물을 점검하는 영화 초반부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땅개가 고지에 깃발을 꽂아야 비로소 전투가 완료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국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은 사람이 해야 한다. 로봇이 끌고 가던 폭발물 수레바퀴가 부서지자 브라보 중대 폭발물 처리반의 톰슨 하사가 직접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투입된다. 거의 완료하고 돌아오려는 순간, 이라크 저항군으로 보이는 거수자가 핸드폰으로 폭발물을 날려 버린다.

현장에서 폭사한 톰슨의 후임으로 윌리엄 제임스 하사(제레미 레너 분)가 부임되어 온다. 그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샌본 병장(안소니 마키 분)과 스페셜리스트 오웬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러티 분)와 함께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 처리에 나선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왜 저항군들이 미군에 저항하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하고 저항에 나서는지에 대한 이유를 캐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 병사들의 순찰도 그렇지만, 항상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 폭발물 처리반의 엄청난 스트레스 가운데서도 제임스 하사의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샌본 병장은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UN 건물 앞에 이중으로 교묘하게 설치된 폭발물을 솜씨 좋게 처리해낸 제임스를 찾은 대령은 그의 노고를 치사한다. 아프간에서부터 자그마치 837건에 달하는 폭발물 처리 기록은 아무나 세우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부대 앞에서 짝퉁 DVD를 파는 이라크 소년 베컴과 친해진 제임스는 소년과 축구를 하며 내기를 하기도 한다. 한편, 제임스의 팀원인 엘드리지는 톰슨 하사의 죽음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군의관 존 캠브리지(크리스찬 카마고 분)는 엘드리지에게서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임스 팀은 작전 중에 현상수배 중인 이라크 포로들을 잡은 일단의 용병들을 만난다. 타이어가 펑크났다는 팀 리더(랄프 파인즈 분)의 말을 듣고 그들을 돕던 중에,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저항군 저격수의 총격을 받고 3명이 KIA(killed in action) 당한다. 저격용 총인 바렛으로 그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한 제임스와 샌본 그리고 엘드리지는 비로소 팀으로 서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계속되는 임무 중에, 군의관 존 캠브리지도 작전에 함께 합류하게 된다. 제임스는 어느 버려진 건물에서 인간폭탄으로 사용되기 위해 죽은 소년 베컴을 발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항군의 교묘한 위장 폭탄으로 존 캠브리지가 폭사하고, 그의 헬멧만이 나뒹군다. 제임스는 베컴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다음날 다시 부대 앞에서 베컴을 만나고 자신이 죽은 소년과 베컴을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 작전에서 원격으로 폭발을 유도한 저항군을 잡기 위해 무모하게, 적진에 뛰어 들었다가 엘드리지가 다리에 총을 맞게 되고 또 마지막 미션에서는 인간폭탄이 된 이라크 민간인을 구하려다 죽을 뻔하기도 하면서 샌본은 더 이상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365일 로테이션을 마치고 이혼한 와이프와 아들에게로 돌아온 제임스는 다시 이라크를 찾는다.

역설적이지만 적어도 독재자 후세인의 통치 하에서는 이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겪지 않았던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 이래 거의 내전에 가까운 수준의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미군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식한 저항군의 끊이지 않는 총격과 폭탄공격에 민간인을 비롯한 미군의 인명 손해는 날로 치솟고 있다. 이라크에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미국의 공언은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출구전략을 세우겠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선공약 역시 요원하기만 하다.

극심한 사회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세계 2위의 원유대국이 물자부족으로 시달리는 이라크의 참담한 현실 대신 캐서린 비글로우는 현지 미군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미군 험비 차량에 돌을 던지는 이라크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잘못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성찰 대신 국가와 할리버튼  같은 군수업체를 위해 오늘도 이라크에서 피 흘리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던 걸까? 하긴 연출자가 누구나 다 마이클 무어처럼 노골적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진짜 메시지는 집에 돌아온 제임스가 아들래미를 얼르면서 한 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난감이나 동물인형 같은 것에 반응하는 아들을 보며, 어렸을 적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 참 많지만 자신처럼 나이가 들게 되면 그런 의미 있는 것들은 한두가지로 줄어 들게 된다고. 제임스 자신처럼, 가족이나 따분한 일상보다도 전쟁에 미친 전쟁광(warmonger)에 더 동정을 하게 된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가족을 뒤로 하고 다시 군복에서 방호복으로 바뀌면서 폭발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전체보다는 다시 한 번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네들의 관점이 부러웠고,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인정받는 현실은 더 감명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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