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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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비켜라! 스페인의 대찬 기사 돈키호테가 있다면 독일에는 허풍과 ‘구라’라면 전 세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뮌히하우젠 남작이 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항상 자기 입으로 내뱉는 이야기가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며, 순도 100%의 진실이라고까지 한다. 당당한 그의 뻥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되새겨 보면, 그가 한창 신나게 뻥을 치던 시기가 21세기가 아니라 300년 전인 18세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허풍이 먹힐 만도 하지 않았을까?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의 저자 고트프리트 아우그스트 뷔르거는 이야기꾼보다는 발라드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실존 인물인 칼 프리드리히 폰 뮌히하우젠 남작(1720~1797)을 모델로 해서 유쾌한 허풍으로 가득 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그의 조국인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고, 자신이 주력했던 시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진짜 뮌히하우젠 남작이 러시아군에 복무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터키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체험담은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에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소설에서 뮌히하우젠이 말하는 게 모두가 다 허풍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적 체험에 기초해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양념으로 적당하게 요리한 글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토의 땅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 세계로 편입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는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폭설이 내린 날 말을 매어 두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말이 교회 첨탑에 매달려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귀족들의 스포츠인 사냥을 즐기다가 오리 떼를 베이컨 한 조각으로 모두 잡았고, 자신을 공격하는 늑대의 아가리에 주먹을 내질러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정말 귀족들의 파티에서 아마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그의 뻥이 타인에게 악의적인 해를 끼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터키와의 전쟁에서는 날아다니는 포탄을 바꿔 타며 적 진영을 정찰하고, 터키 술탄의 포로가 되어서는 새끼줄을 꼬아 달에도 갔다는 황당한 설정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바다 모험은 한층 더 스케일이 커진 뮌히하우젠의 허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그 길이가 800미터나 되는 고래 이야기에, 두 번째 달나라 여행 그리고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너끈하게 집어삼킨 바다 괴물 이야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뮌히하우젠의 허풍으로 가득한 여행 중에서 역시 최고의 이야기는 다섯 명의 용사들과 함께 터키의 술탄에게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공주의 토카이산 포도주를 대접한 이야기다. 우선 남작은 우연한 기회에 재주 많은 다섯 명의 용사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허풍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이 용사들이 가진 특출한 재주를 이용해서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완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아무리 허풍이 센 뮌히하우젠이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어려운 내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사이드킥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를 벗어나, 비로소 이성에 근거한 계몽시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고 뷔르거는 이런 황당무계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달나라에 대한 상상이나 혹은 그 달에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창조적(혹은 타인의 것을 차용했을)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기만 하다. 물론, 새끼줄을 꼬아 달에 도달한다는 그의 서술은 황당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달에 가게 되었다는 본질을 비추어 볼 때 고트프리트 뷔르거의 상상력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1989년에 <바론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로도 발표됐었다. 과연 뷔르거의 소설적 상상력이 20세기 영화에서는 어떤 비주얼로 구현됐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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