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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ㅣ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거의 십 년에 걸쳐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로 시작된 나의 로마사에 대한 관심은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마사를 전공한 로널드 사임의 역작 <로마혁명사>에도 도전하게 해주었다.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으로의 역사적 이행기는 카이사르를 필두로 해서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토 그리고 키케로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스티븐 세일러의 작가가 1991년부터 내놓고 있는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는 바로 이 시기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인 <로마인의 피>는 기원전 80년, 평민파 마리우스와의 치열한 내전 끝에 독재관의 자리에 올라 로마의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치세에 일어난 존속살해 사건으로 시작한다. 아메리아 출신의 농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가 동명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고대 시대에 살부죄는 극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대의 변론가 키케로가 이 사건의 변호를 맡는다.
로스키우스 집안의 파트로누스(후원자)를 맡은 메텔루스 집안의 카이킬리아의 의뢰로 사건을 맡은 키케로는, ‘더듬이’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사설탐정 고르디아누스에게 협력을 구한다. 이미 기성의 유명 변호사인 호르텐시우스도 거절한 사건을 덥석 문 키케로와 고르디아누스는 억울하게 아버지 살해의 누명을 쓰게 된 로스키우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전력을 질주한다. 물론, 앞으로 그들의 앞에 닥쳐올 위험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사실 5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 조금은 위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로마 시내에 대한 오랜 연구 덕분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천년도시 로마의 수부라, 에스퀼리노 언덕 그리고 포룸 같은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일품이었다. 아울러 키케로나 술라 같은 실재 인물은 물론이고 고르디아누스라는 사건 해결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건네주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멋진 캐릭터의 창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평민과 귀족의 대결이라는 로마 건국 이래, 갈등의 원인이었던 문제는 물론이고 고대 도시국가 로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노예제도에 대한 현대적 접근 역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로마 서브 로사 1:로마인의 피>에서 가장 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지적 역사추리소설이라는 말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치밀한 구성과 사건 전개에 있어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티븐 세일러의 탁월한 집필 능력이었다. 더 놀라운 건, 계속되는 시리즈를 위해 후속편에 주인공으로 나서게 될 크라수스를 등장시킨 방법이었다.
술라가 반대파를 숙청하면서 국가의 적으로 몰려 재산몰수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 재산을 헐값에 사들여 부를 축적하면서 중앙 정계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 훗날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더불어 삼두정치의 한 축을 맡았던 크라수스에 대한 소개는 정말 멋졌다. 아마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이보다 멋지게 소개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역시 추리소설답게 의문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사건의 배후를 쫓는 명탐정 고르디아누스의 활약에 더불어 그의 사이드킥으로 등장하는 베테스다, 티로, 루푸스 그리고 그에게 복수의 칼을 쥐여준 소년 에코에 이르기까지 쉴새 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즐겁다. 물론,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하는 악당들 역시 이야기의 극적 요소들을 한껏 고무해준다. 아무 문제 없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그것도 심심하지 않을까. 로스키우스의 무죄 판결을 위한 고르디아누스의 이전투구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이 계속되는 음모와 반전은 정말 시대적 상황만 고대 로마일 뿐, 현대판 추리극에 전혀 뒤지지 않은 재미를 제공해 준다. 실제 역사상의 주인공들을 등장하는 팩션 장르가 가질 수 있는 리얼리티의 진수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옥의 티라고나 할까, 등장인물 이름에 대한 오기가 정말 눈에 거슬렸다. 처음에는 틀린 부분들을 체크해 가면서 읽다가 나중에 가서는 너무 많아서 포기해 버렸다. 다음 달에 후속편으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다룬 <네메시스의 팔>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출판사 측에서 좀 더 신경을 써서 그런 오류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로마 공화정 말기를 관통하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