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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조세현 작가는 사진을 영상 기호라고 표현을 한다. 기호가 나왔으니, 책의 기호에 대해 한 번 분석해 보도록 하자. 우선 <조세현의 얼굴>이라는 제목 글씨 뒤로 노란색 표지가 푸근하게 독자들을 맞이한다. 노란색의 상징성은 바로 따뜻함과 포용이다, 뛰어난 인물사진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이 표지 색으로 이미 독자들에게 조용히 그 신호를 보낸다.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최정상의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는 작가는 빛이 만들어내는 예술인 사진으로 더욱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자신의 믿음을, 멀리 중국의 시안[西安]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사는 이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빛과 그림자라는 사진 예술의 기본 명제처럼, 그의 첫 오브제는 바로 그림자 연극이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포토그래퍼와 즐거운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말대로, 회색빛 콘크리트로 물든 대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마른 인상을 짓는 이들의 그것보다 시골마을이나 시장통의 갑남을녀들의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들이 텍스트의 풍성함을 더해 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사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조세현 작가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기에, 낯선 이가 카메라를 가지고 근접촬영을 하는데도 어떤 거부감 없이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들을 잡아낼 수가 있었을까. 하긴, 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책에 그렇지 않은 사진들은 실릴 수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마치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처럼, 카메라라는 빛을 담는 무기를 장착한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눈이 다 짓무르도록 카메라 뷰파인더를 노려 보았으리라.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사진을 찍었을 그 순간의 희열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었다. 천 개의 찐빵을 담을 수 있다는 통을 앞에 둔 부자의 모습에서, 그림자극을 보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 속에서, 코를 줄줄 흘린 채 아빠의 무등을 탄 꼬마에게서, 냉차를 팔다 말고 한없이 선량한 눈빛을 가진 청년의 모습에서 조세현 작가는 자신이 정말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고갱이를 남김없이 표현해내고 있었다.
한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안의 편린들을 쫓는 작가의 시선도 느껴졌다. 이천 년 전 진시황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던 병마용갱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화(漢和)된지 오래지만, 이슬람교를 믿으며 여전히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그 골격과 생김새부터 다른 후이족[回族]들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서 세상과 침묵의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했던가. 멋지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말 “심안”(心眼)으로 우리네 삶의 본질들을 볼 수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정말 뛰어난 사진작가에게 한 수 배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