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시감으로 서가에서 이 책을 골라냈다. 그 제목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책이 아닌가 말이다. 침대 밑에 악어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우선 글쓴이는 마리아순 란다라는 이름의 스페인 출신의 작가다. 이 책외에도 <벼룩, 루시카>라는 책을 한 권 봤는데 그 책 역시 재밌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우선 주인공으로 작가는 JJ라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샐러리맨을 등장시킨다. 도대체 JJ라는 이름은 뭐의 이니셜일가? 호세 훌리오(Jose Julio) 정도 되려나,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물러선다. 어쨌든 잠자리에서 일어난 JJ는 자기 침대 밑에 회색빛을 한 파충류 악어가 떡하니 도사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여행용 가방 크기만 한 녀석은 JJ의 구두를 씹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구두를 먹이로 삼는 악어라니.

도대체 악어가 어디에서 나왔건 간에 독신자 JJ는 그 녀석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보내고자 한다. 동물원에서 탈출했을까?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수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황당한 일이다. 악어가 있었음직한 동물원 놀이동산에 전화해 보지만, 미친 놈 취급을 받는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정육점의 주인장 세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역시 예상대로 그 구두 먹는 악어는 JJ에게만 보이는 슈퍼 투명 악어였다!

사무실의 참견쟁이 에우랄리아 아줌마와 JJ의 짝사랑녀 엘레나의 시선을 피해 가며, 자기 친구 이야기인양 악어 이야기를 꺼내본다. 결국 JJ는 에우랄리아의 아줌마의 조언대로 병원을 찾는다. 의사에게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처방전을 받은 JJ는 약사로부터 악어병이 거미병보다는 나은 증상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도대체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그의 악어병은 점점 더 심각해지기만 할 따름이다. 우리의 JJ는 과연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악어병으로부터 탈출할 수가 있을까.

일견 황당해 보이는 악어의 상징성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됐다. 도대체 이 소설에서 악어는 JJ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거야말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결정적 코드가 아닐까 싶었다. 그 실마리는 의사가 처방해준 크로커다일 알약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독신의 광기에 사로 잡혀 홀로 사는, 현대인들의 번뇌, 고독 그리고 불안에서 비롯된 복합적 증세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악어라는 실존적 괴물의 정체인 것이다.

동시에 그 큰 도시에서 친구라고 마땅하게 부를만한 사람이 달랑 한 명 있다는 설정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직장 동료로 나오는 매력녀 엘레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만, 소심하게 말도 채 꺼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악어에게 잡아 먹힐까봐 전전긍긍하는 JJ에 대한 묘사가 현대인의 심리에 대한 직격탄처럼 날아든다.

이런 불안과 현실로부터의 괴리들은 타인과의 통섭과 교류를 통해 치유된다. 자포자기한 상태의 JJ에게 갑자기 찾아온 엘레나와의 대화를 통해 드디어 주인공은 악어병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흉악한 포식자로 알았던 악어가 알고 보니 보잘 것 없는 도마뱀이었다는 설정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역시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유심론(唯心論)의 변주였던걸까.

개인적으로 이런 소품 스타일의 글들이 좋다. 곧바로 마리아순 란다의 다른 책 <벼룩, 루시카>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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