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산책>을 리뷰해주세요.
-
-
핀란드 디자인 산책 ㅣ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년 전에 베를린에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핀란드 출신의 청년과 쿠셋을 같이 사용하게 됐다. 사실 난생 처음 보는 핀란드 사람이라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긴 밤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파리로 향했다. 대학에서 하키를 한다는 그 친구는 등판에 수오미(Suomi)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티를 입고 있었는데 물어 보니 자기네 나라 말로 핀란드를 지칭한다나. 그리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핀란드의 전 대통령 만넬헤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집에 그 유명한 핀란드 메이커인 피스까스(Fiskars)의 녹슬지 않는다는 주황색 손잡이의 가위를 하나 가지고 있다.
수년간 핀란드에 거주했다는 안애경 작가의 <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비록 타이틀에 ‘디자인’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 디자인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수오미네들의 삶과 그 삶 속에 군데군데 아로 새겨진 디자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에서도 변방 국가에 속하는 국가다. 예로부터 이웃 국가 러시아(구 소련)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왔고, 2차 세계대전 중에 발발한 겨울전쟁으로 러시아에게 자국의 많은 영토를 할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북구의 나라답게 왠지 핀란드하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엄동설한이다. 작가는 숲과 호수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핀란드 디자인의 세계와 생소한 풍물들을 다년간의 체류 경험을 통해 멋진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바로 실용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엄청난 숲이라는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핀란드 교육 과정에 목공 실습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국민들은 누구나 다 어려서부터 목공 기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게 된다. 목공 기술뿐만 아니라, 자원의 재활용 측면에서도 수오미들은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 준다. 작가가 “에코 디자인”으로 명명한 자연에서 그 모티프들을 딴 자연친화적인 디자인들이 그야말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특히 수도 헬싱키 외곽에 위치한 “글로베 호프” 작업실 탐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작가는 핀란드의 공공 디자인과 자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유도하는 도시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자연보호와 보존보다는 언제나 개발 논리가 우선하는 우리나라의 무계획적인 도시설계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그렇게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디자인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마냥 부러웠다. 그건 아마도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능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교육 시스템과 평등한 사고에 기반을 둔 사회적 노력이 그 바탕이 되지 않았나 추정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암석 교회>(Rock Church)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멀리서 보면 교회라는 종교적 색채조차 드러나지 않게, 그야말로 생활 그 자체로 다가오는 암석 교회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예배와 결혼식 혹은 장례식 외에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설명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사회봉사의 미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빛의 소리를 듣는다는 소제목 역시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역시 핀란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산타클로스와 온 국민들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우나 이야기 역시 백미였다. 어려서 읽은 작고하신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 핀란드 편에서, 한 겨울에 사우나를 하고 눈밭에서 뒹구는 여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안애경 작가의 글을 보면서 정말 사우나가 수오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수오미네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자작나무로 각종 목공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또 사우나의 연료로도 사용하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삶의 모습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하는 그네들의 삶 속에 흠뻑 빠져 들었던 유쾌한 독서체험이었다.
*** 책을 읽으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내용들
1. 작가는 25쪽에서 ‘핀란드의 영웅 만넬헤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만넬헤임은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편에서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운 전범이다. 과연 그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이 어울릴지 궁금했다.
2. 예무르 -> 예르무 (오탈자, 133쪽)
3. 236쪽에 “카누 타는 방법”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사진에 나오는 건 카누가 아니라 카약이다.
4. 251쪽 : 핀란드가 독립하기 전, 그 유명한 러시아와의 겨울전쟁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건 1917년이고, 겨울전쟁은 1939년에 일어났다. 핀란드 역사 부분에 있어. 작가가 혼동한 것 같다.
5. 영어단어 joy 에 평화라는 뜻이 있던가?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