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금지된 도시? 굳이 데카르트의 사유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이 사유, 다시 말해서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한편으론 생존을 위해 부단 없이 생각을 해야 하는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한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 마누엘 F. 라모스는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엄청난 세월이 흐른 기원후 49세기로 독자들을 조심스럽게 인도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카르멜로 프리사스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나이 서른 안팎의 복지부 공무원이다. 그는 내리막길을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충동에 사로 잡혀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타고 났나 보다. 어느 날, 그렇게 내리막길을 보고서 무지막지한 스피드로 뛰는 도중에 세계 대통령의 핸드백을 가지고 도주하던 범인과 충돌하면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병원에 입원한 카르멜로에게 반한 여간호사의 육탄공세와 심지어 여성인 세계 대통령조차 그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세계 대통령의 각료로 ‘나쁜 환경부 장관’인 조르드는 이를 이용해서 영웅 카르멜로에게 가공할만한 범죄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전임 세계 대통령인 아나를 하야시킬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 때문에 스페인 독자들이 열광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마누엘 F. 라모스의 은유와 블랙유머가 가득한 스토리텔링들은 어쩌면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휘발이 되었는지 좀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분명 추리소설의 장르적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집중력이 분산이 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일본 작가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에서처럼 소설 처음에 아예 등장할 인물들의 이름을 죽 늘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계와 개연성에 대한 설명이 사족처럼 따라 붙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듯한 미스터리한 연쇄살인과 주인공이 검증받지 않은 시술을 통해 거의 불사신과 같이 재탄생된다는 설정은 마음에 들었다. 사실 200쪽 남짓한 짧은 분량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현재로부터 근 30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빌 게이츠의 가문이 거의 전설처럼 유지된다는 가설 또한 흥미로웠다. 그렇게 먼 훗날에도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존재와 모든 각료들이 정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취향 때문인지 모처의 비밀클럽을 출입한다. 물론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책읽기도 금지되고, 음악의 존재마저 없는 가운데 예의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무슨 낙으로 살지 궁금했다. 아쉽게도 스페인식 블랙유머와 나랑은 그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