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등점이라고 들어 보았는가? 아니 이렇게 말하면 더 쉬울 것 같다. 끓는점이라고. 물의 끓는점은 모두가 다 알다시피 100℃이다. 이 상태가 되면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 상태로 본질적 전이를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느 특정한 상태에서 전혀 다른 상태로 변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만화 <100℃>에서 최규석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모두 해서 10개의 장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100℃>는 이미 작년부터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가 있었던 작품이다. 아주 시기적절하게 6월 민주항쟁 22주년 맞이해서 2009년 6월 10일에 다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작년에 온라인으로 배포된 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자신의 집권 마지막 해였던 1987년 봄에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절친 노태우에게 다시 한 번 체육관 선거를 통해 정권유지를 하겠다는 호헌선언를 한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의 거대한 흐름이 민주주의의 역행을 바로 잡고, 개헌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하는 과정에 작가는 초점을 맞춘다. 가난한 가정의 막내아들로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진학한 영호는 어려서부터 반공소년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영호는 대학과 가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사회적 현실들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주류사회로부터 기만당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행동하지 않는 이성은 죽음이라고 했던가, 아버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호는 학생운동에 뛰어 들게 된다. 보다 극적인 각성은 영호의 어머니에게 읽혀진다. 어려서 빨치산 동조자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에 대한 남모를 비밀을 가지고 있는 영호의 어머니. 그녀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헌법에 명시된 시위를 하던 중에 경찰에게 붙잡혀 징역살이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전두환 독재정권의 위선과 기만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기존의 언론 방송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는 이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광경이 너무나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새로운 천년에도 이들의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던 전두환 정권의 바닥에 떨어진 도덕성에 국민들의 비등점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1987년 6월 9일 시위 도중, 연세대 출신의 이한열이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등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은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 내기에 이른다. 최규석 작가는 사회의 가장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역사적 사건에 이르는 단초들을 말없이 독자들에게 나열해 준다. 지난 역사를 개인의 평가에 맡기려는 듯 말이다. 영호 어머니의 각성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의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이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이라는 역사 진보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2009년 6월, 현재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은 여전히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보인다. 6월 민주항쟁 기념에 즈음해서, 서울광장은 여전히 개방되지 않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성취해낸 소중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유시민 선생의 그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선언했듯이, 정당한 대가 없이 얻은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는 후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맴도는 6월 10일의 스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