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넬라 Passionella
줄스 파이퍼 글.그림, 구자명 옮김 / 이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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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파이퍼, 사실 이 책 <패셔넬라>를 접하기 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장 자끄 상뻬의 책들은 많이 접해 봤었는데 줄스 파이퍼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책날개에 실려 있는 작가의 경력을 보니 대단한 인물이었다.

1929년 생으로 올해 81세의 만화 작가인 줄스 파이퍼는 뉴욕 브롱스 출신으로 1940년에 대작가 윌 아이즈너의 휘하에서 스토리텔링과 만화 작법을 배웠다고 한다. 파이퍼는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뉴요커, 네이션 그리고 플레이보이 같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특히 그의 출세의 발판이 되었던 “빌리지 보이스”에는 자그마치 42년 동안이나 만화를 연재하기로 했다. 그가 그린 만화들은 19권의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된 줄스 파이퍼의 책인 <패셔넬라>에는 모두 해서 6편의 만화가 실려 있다. 가장 먼저 타이틀인 <패셔넬라>에서는 미모 지상주의에 물든 현 세태를 굴뚝 청소부 넬라의 화려한 변신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연기보다도 외적인 면, 특히 글래머 미녀스타라는 정형만을 원하는 할리우드 영화판을 파이퍼는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디즈니 전형의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나긴 하지만, 전래 동화인 <신데렐라>와 <개구리 왕자>의 절묘한 조합에 작가 나름의 비판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는 <패셔넬라>에 실린 만화 중에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먼로>에서는, 네 살짜리 어린 아이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가 언젠가 말했듯이 학교와 군대가 사람을 개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했던가.

군대라는 획일화된 조직을 통해, 개성을 잃어버리고 철저하게 조직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네 살배기 먼로의 눈을 통해 제시된다. 사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미국의 청소년들이 나이를 속여 가면서 입대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 후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의 병역기피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게 되지만 말이다.

냉전시대 전체주의의 모습을 우화화한 <해롤드 스워그> 또한 <먼로>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냉전시대 불구대천의 원수인 구 소련과 대결을 위해 경쟁에는 전혀 관심을 없는 보통 사람 해롤드 스워그를 올림픽 경기에 출전시키기 위해 사회의 모든 단체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주인공을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50년대 전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카시즘의 광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후반의 세 작품들인 <조지의 달>, <외로운 기계> 그리고 <관계>는 이전 작품의 무거운 주제들과는 달리 삶에 있어서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패셔넬라>를 보면서 작가 줄스 파이퍼의 정밀하기 보다는 사물의 특징들과 형태를 잡아내며 작법이 왠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아마 그가 오랫동안 <뉴요커>지를 비롯한 유력지들에 카툰들을 기고해서 그래서였나 보다.

줄스 파이퍼와의 나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가 만화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퍼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예일과 노스웨스턴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했다. 지난 1986년에 다년간 “빌리지 보이스”지에 만평을 게재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셔넬라>의 출간을 계기로 해서, 앞으로 다양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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