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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단편소설집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앨런 스튜어트 코니스버그. 우리가 우디 앨런으로 알고 있는 미국 유대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꼽는 감독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35살이나 차이가 나는 순이 프레빈과의 결혼으로 인해, 파렴치한 노인네로 평가절하 받고 있지만.
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 편도 보지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마이티 아프로디테>,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 같은 그의 걸작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우디 앨런 특유의 걸출한 수다의 입담, 냉소적이 블랙 유머와 그의 현학적인 잘난체에 반해 버렸다. 어찌나 유식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지 <한나와 그 자매들>을 통해 배운 “hypochondriac”(자기 건강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란 단어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처음으로 우디 앨런의 글과 만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활동적으로 영화판을 누비고 있는 이 노친네는 저명한 잡지인 <뉴요커>에 기고한 18편의 단편들을 모아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를 팔아 타이틀로 삼았다.
평생 뉴욕을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아온 우디 앨런은 뉴욕 그 중에서도 여피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에 서식하는 오만가지 인간군상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교육 경쟁의 단면을 그린 <탈락>에서는 유명 사립유치원 면접에 떨어진 아이를 둔 부모의 고뇌를 스케치해낸다. 이 장면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내니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타이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였다. 니체의 그 유명한 철학 산문시를 교묘하게 비틀면서 뉴요커들의 섭생의 미학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잘난 현학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로 인한 무지한 독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데 있어 일말의 양심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사이비 종교와 보통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건설업자 그리고 자신의 주 무대인 영화판 역시 우디 앨런의 냉소로 가득 찬 독설을 피해갈 수 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유사 이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영화판의 (우디 앨런이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천재적 창조성’의 부재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여과 없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열량을 섭취할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겠지?
<오, 친애하는 유모여>에서는 자신들이 고용한 유모가 소설의 주인공 부부를 모델로 해서 쓴 글에 대한 경악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디 앨런의 전처가 그들의 사생활을 책으로 출간을 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우디 앨런식 패러디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딸 같은 순이 프레빈을 12년째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글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분명 다른 스타일의 번역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흠, 그 정도로 무지했던걸까. 책의 판형도 보통 책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일러스트를 맡은 이우일 씨의 그림들이 마치 엽서처럼 책의 곳곳에 끼워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특히 니체와 같은 식탁에 앉은 우디 앨런의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밀레니엄 캐피털 뉴욕을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글들이 너무 재밌다. 역시 영화에서처럼 그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들은 유쾌하기만 하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뻔뻔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이렇게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작가적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 앨런 특유의, 비꼼의 미학이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