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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2년 전 85세의 나이로 영면의 세계로 떠난 미국 출신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출세작인 <고양이 요람>을 읽었다.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보네거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읽었던 <마더 나이트>가 가장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더 나이트> 역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1963년에 출간된 <고양이 요람>은 보네거트의 네 번째 소설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상의 인물인 펠릭스 호니커 가족사를 파헤치는 저널리스트 존의 심층취재와 후반부의 산로렌조 공화국에서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내내 보코논교라는 산로렌조의 존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사이비 종교의 외경(外經)에 나와 있는 글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다. 카라스, 듀프라스, 그란팔룬, 웜피터 그리고 포마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그 정체들을 알 수 없는 어휘들의 홍수가 쏟아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존도 보노콘교의 신자였던가? <제5도살장> 첫 머리에 뻔뻔스럽게 정신분열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마 <고양이 요람>도 비슷한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만 했던 걸까. 글 중에서 “역동적 긴장”이라는 표현이 어찌나 이리도 공감이 가던지.
존이 소설 속에서 쫓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의 모델은 실존인물인 1932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출신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라고 한다.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사의 해결책처럼 제시되는 과학과 기술, 동시에 과학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 호니커 박사의 자식들을 통해 고인 생존의 모습을 스케치해 나가던 존은 아이스-나인이라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단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가공할 절대무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것은 50-60년대를 휩쓸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불안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가상의 섬나라 산로렌조 공화국으로 떠난 존의 취재여행에 집중된다. 존은 그곳에서 그가 찾아 헤매던 호니커 박사들의 자식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사이비 종교인 보코논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우리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소설은 뒤죽박죽인 상태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냉전 시대의 무한군비경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 평화주의라는 작가의 뚜렷한 메시지는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지만, 마치 쥘 베른의 철지난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이비 보코논교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정말 정신분열적인 상태에서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들고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언젠가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를 매긴 적이 있었는데 <제5도살장>과 더불어 <고양이 요람>에 당당하게 A+를 주었다. 소설 중에 나온 절대 자신의 글에 스스로 색인을 달지 말라고 했던 색인전문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냉소적인 블랙유머로 무장한 커트 보네거트는 핵폭탄으로 지구를 몇 번이나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경쟁이 치열하던 시대상을 “실뜨기 놀이”(cat's cradle)에 비유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을 교화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학교에서 지배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생소한 커트 보네거트 특유의 용어들이 낯설어서 책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위트 넘치는 블랙유머들을 맛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