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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평점 :
이 책은 일본의 전직 극우파 펑크록가수로, 현재는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기수이자 시사 잡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 작가인 아마미야 카린을 위한, 그녀에 의한 책이다. 물론 최근 <88만원 세대>와 <괴물의 탄생> 등의 저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우석훈 교수도 공저로 되어 있지만, 기본 줄기는 아마미야 카린의 서울 탐험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마미야 카린의 전력은 특이 그 자체이다. 일본에서 버블경기가 빠지고 나서 취업의 빙하기가 도래했던 1990년대 그녀는 “유신적성숙”이라는 극우적 향기가 풀풀 풍겨나는 펑크록 보컬리스트로 사회경력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좌파감독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난 후, 아마미야 카린은 극적인 전향을 이룬다. 그리고 오늘날의 새로운 아마미야 카린이 탄생했다.
OECD 국가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중이 가장 큰 우리나라만큼이나 고용불안과 그로 비롯된 빈곤과 차별이 만연화된 일본에서 그녀는 ‘프리터’라고 불리는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허상을 발가벗긴다. 책의 말미에 달린 우석훈 교수의 글에서도 보이듯이, 해방 이후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동일하면서도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점점 사회적 괴물이 되어 가는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한일양국 비정규직 그리고 가난과 차별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아마미야 카린의 눈에 비친 오늘날 서울의 모습이 <성난 서울>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자본주의 대국 미국에서도 아무리 일을 해도 현재와 미래의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계층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작년에 또 다른 일본작가 츠츠미 미카의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를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일본과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에서는 파견근로자법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미명 하에 진행된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으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이말삼초의 젊은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측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분열을 꾀하고 있다. 언젠가 뉴스에서 통근버스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좌석제를 실시하겠다는 어느 회사의 공고문을 보고서 지난 세대 미국에서 보았던 인종차별의 광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21세기판 인종차별 아니 노동차별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방인인 아마미야 카린의 시선으로 우리네 현실들을 되짚어 읽는 과정이 그렇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방인인 만큼 그만큼의 객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짧은 일정 간에 여러 곳을 둘러 보다 보니 그만큼 다루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것도 불가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우리도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는 이방인인의 존재에서 경쟁과 성공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정글과도 같은 현실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과 연대의 씨앗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마미야 카린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서의 모순들을 짚어내는 저술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우석훈 교수의 분석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빠진 점들을 상당 부분을 상쇄시켜 주고 있었다. 읽는 동안 절로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가 막힌 운영의 묘를 보여준 편집인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우석훈 교수는 기존에 발표한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고용의 창출을 위해서 기존의 기업들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들을 육성할 것을 주문한다. 고용시장에서 실제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톺아낸다. 특히 적게 벌더라도, 적게 쓰면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에 되갚는 순환적 경제론에 큰 공감이 되었다.
언제나 시작은 미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희망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