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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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제법 많은 문항들에 차례로 답변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나온 유형지표를 보고 개인적 성향과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서 놀란 기억이 난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의 저자 김태형 씨는 조선의 다섯 인물들에게 칼 융의 심리유형론에 근거한 MBTI 분석으로 심리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조선조 22번째 왕이었던 정조 이산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일설에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그로 인한 아버지 영조와의 불화로 죽음에 내몰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이복형 경종을 독살하고 세제로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농후한 영조의 피폐한 정신건강이 노론과 소론의 격심한 당쟁 가운데 영조-사도세자 불화의 도화선이었다고 한다.

사서에 보면 영조 대에 아버지 영조를 도와 14년간이나 대리청정을 한 사도세자가 공무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다면 그 증상에 대해 사관들이 기록을 했어야 하는데 사서에는 그런 증거가 없다고 한다. 다만 사적인 영역에서만 발병했다고 하는데, 이는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의 통제 밖의 일이다.

11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는 자신의 즉위를 방해하려는 노론의 끊임없는 방해와 즉위 후에도 암살음모와 역모에 시달려야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은 그 중심에 자신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가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혜경궁 홍씨를 풍산 홍씨 집안의 특공대원으로 부르면서, 왕실이나 자신의 친아들인 정조보다도 홍씨 집안만을 생각한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폄하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게 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지아비를 구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아버지 없이 자란 정조는 비슷한 케이스의 연산군과는 대조적인 전략가형(INTJ) 인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유년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와의 건강한 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안정적 정서를 갖추고,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국정운영에 나서게 된다.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따르게 되는, 단시간에 무리를 해서 아버지의 추숭사업을 추진하려고 하기 보다는 많은 준비와 기다림의 긴 과정을 거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 준다. 조선조의 마지막 개혁군주로써 비록 그의 계획한 개혁들이 완수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모범적 정치지도자로서의 정조의 위상이 제시된다.

두 번째 인물로는 조선 3대 성리학자로 유명한 율곡 이이의 차례다. 율곡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꼽히는 신사임당의 아들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빛나는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던 부인에 비해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너무나 초라한 삶을 살았다. 부인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벼슬에 뜻이 없던 율곡의 아버지는 일찍이 사회생활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 율곡에게 무능력한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중의 관계였다.

율곡은 무려 장원급제를 9번이나 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릴 정도의 천재였다. 율곡이 세운 기록은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율곡 역시 정조와 마찬가지로 전략가형(INTJ) 스타일의 인물로, 대쪽 같은 절개와 청렴함을 바탕으로 그가 섬기던 임금 선조 앞에서도 그야말로 할 말 안할 말 가리지 않는 선비의 모습 그 자체였다. 비록 세조의 쿠데타와 중종반정 등의 정치적 격변을 겪기는 했지만 적장자 직계 승계를 유지해 오던 조선 왕실은 선조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방계 출신 왕을 내게 된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 의지박약과 실천력이 부족했던 선조는 율곡의 아버지처럼 내향직관감정형(INF)의 인물이었다. 저자는 율곡이 자신의 아들 뻘인 선조를 무의식적으로 아버지화했을지도 모른다고 추론하고 있다. 율곡은 선조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했으나, 비록 율곡을 크게 중용할 정도의 위인이 되지 못했던 선조는 율곡의 사람됨을 알고 크게 처벌하지는 않았다. 율곡은 관직생활을 하면서 관직에 나가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낙향하기를 반복했지만 선조는 율곡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았다. 그건 율곡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목한 대가족이라는 율곡의 이상은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도원경이었지만 율곡은 평생 그 꿈을 버리지 않았던 참다운 유학자였다.

세 번째 인물로는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교산 허균이 나온다. 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수많은 명문장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 허균에 대해 저자의 평가는 정조와 이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박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려서 잃은 허균은, 둘째형 허봉을 실질적인 아버지로 대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첫 번째 부인 김씨를 통해 유년기의 심리적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임진왜란 통에 부인을 잃고, 은둔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서로 병존할 수 없는 이상 사이에서 평생을 고민하게 된다.

허균은 홍길동전과 같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신분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혁명가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지만, 저자는 이를 반박하고 있다. 허균에게는 현실세계에서 안주하려는 경향만 있었지 그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개혁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중앙정계에서, 다른 이들과 경쟁하지 않고 지방수령 자리들을 전전하면서 향락생활을 즐긴 것만으로도 그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파악할 수가 있다. 결국 권력을 쫓다가, 광해군 대에 이이첨의 간계에 걸려 역적의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연산군은 그동안 숱하게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이나 상황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연산군의 기행과 폭정은 그의 잘못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조의 쿠데타로 시작된 불의의 정치를 기원으로 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통해 득세한 훈구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왕권에 버금갈만한 권력을 갖게 되면서 국정에 혼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마마보이로 세 명의 대비들에게 휘둘리게 되면서,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사사하게 된다.

이렇게 암울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 연산군 역시 자신의 할머니뻘인 대비들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주변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연산군은 군주의 성격보다는 예술가나 예능인의 재능을 타고났다. 훈구파의 조종에 의해 발생한 무오사화를 통해 자신에게 직간을 해대는 사림파들을 일소한 연산군은 갑자사화에서는 그 화살을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훈구세력에 돌리면서 사방을 적으로 만든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유배지 강화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서두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전업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그네들처럼 전문적인 고증 작업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자신의 전문분야인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작업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역사 분야에 있어서 좀 더 전문적인 식견의 부족이 아쉽긴 하지만, 거의 전무했던 타 학문과의 퓨전적인 만남이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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