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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우연하게 어마어마한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경찰에 신고하겠는가, 아니면 자신이 아무도 몰래 그 돈을 챙길 것인가. 이런 아주 간단한 가정으로 스콧 스미스의 놀라운 데뷔작 <심플 플랜>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고도의 심리극을 전개한다.
장소의 배경은 미국의 중서부에 위치한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 아셴빌. 사료상에서 부매니저이자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행크 미첼은 임신 8개월의 멋진 아내, 번듯한 직장을 지극힌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형인 제이콥과 그의 절친 루는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의 눈에 그들은 하릴없는 건달로 보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 봐도 보통과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들이 어느 날 놀라운 횡재를 하게 된다.
매년 말일인 12월 31일에 7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행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묘지로 찾아 가던 중, 제이콥이 키우는 개가 인근 농장에서 키우는 닭을 물고 도망가는 여우를 쫓아간다. 제이콥의 개 메리베스를 찾기 위해 눈밭을 헤매던 중 그들은 고장 나서 추락한 비행기 속에 들어있는 440만 달러의 현찰을 발견하게 된다.
행크는 건전한 시민답게 경찰에게 알리자고 제의하지만, 제이콥과 루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서 돈을 삼등분해서 나눠 갖자고 제의한다. 행크 역시 돈에 대한 욕심(초기에 아마 이런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몰랐다고 작가는 지속적으로 독자들을 일깨워준다)으로 이 모의에 가담을 한다. 돈을 발견한 셋만 이 사실을 알자고, 행크를 다짐을 받지만 자신부터 아내 사라에게 바로 말을 해버린다.
그 다음부터 마치 화학의 연쇄반응처럼 돈 때문에 불상사가 연달아 발생을 한다. 행크와 제이콥은 사라의 조언대로 얼마간의 돈을 다시 추락한 비행기에 가져다 놓으러 가는 길에 만난 인근에 사는 피더슨을 살해한다. 게다가 계속해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는 루를 행크는 이성적으로 달래 보려 하지만, 도박 빚에 쫓기는 루는 막무가내다. 결국 행크는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작가가 도대체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맺을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1년 전에 읽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 장교로 유대인 전멸 계획은 수행한 실무책임자 중의 하나인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다루면서,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vanality of evil)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죽음의 가스 수용소로 유대인을 실어 나른 평범한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그런 인류사에서 최악의 악행으로 기록될지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지극히 보통의 삶을 살던 이들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자기도 모르게 가담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심플 플랜>에서도 주인공이자 화자인 행크는 전형적인 보통 사람으로 기본적인 윤리와 시민의식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그의 삶에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엄청난 금액의 돈이 뛰어 들어오는 순간, 그의 아내 사라와 마찬가지로 잠재해 있던 욕망과 탐욕이 이 거저 얻은 부(富)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기본 덕성들을 거세해 버리는 과정을 스콧 스미스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심리묘사는 정말 대단하다. 책을 읽는 동안,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순간마다 작가는 개입을 해서 나의 가정들을 행크의 행동으로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의 조언으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결정의 순간들은 언제나 급박했고, 그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아주 간단한 설정에서 시작을 해서, 깊숙한 인간 내면 심연의 세계에까지 도달하게 만들어주는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전개 그리고 치밀한 구성이 도저히 신예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책을 읽고 나서, 1998년에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도 보게 됐다. 원작에서 스콧 스미스가 주변의 상황 전개와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와 같은 디테일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면 (역시 작가가 각색을 맡은) 영화에서는 사건 자체에 비중을 두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행크의 형 역할을 푸짐한 체구의 존 굿맨이 맡길 바랬는데, 비쩍 마른 빌리 밥 손튼으로 캐스팅이 된 게 아쉬웠다.
스콧 스미스는 1993년에 <심플 플랜>을 발표한지 13년 만인 2006년에 자신의 두 번째 소설 <폐허>(비채에서 작년 4월에 출간되었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다작을 하지 않는 작가답게, 자신의 글에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신선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게으름에 대한 미필적 고의성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호러/스릴러의 제왕이라는 불리는 스티븐 킹이 극찬한 서스펜스의 새로운 대가 스콧 스미스의 신작을 읽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13년을 기다려야만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