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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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작품을 전문적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딘 딘 쿤츠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 보았는데,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벨로시티>로 그와 첫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다. 벨로시티(velocity) 라, 속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속도라는 뜻만 있는게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되서, 위키피디아에게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 이상의 대답을 내주었다.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말로 위치의 변화율을 지칭하며, 속도를 뜻하면서 동시에 그 방향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 <벨로시티>의 주인공 빌리 와일스의 육체적, 도덕적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 “벨로시티”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부근의 내퍼 카운티였던가. 어느 이름 없는 ‘선술집’에서 이 기이하면서도 읽는 순간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주인공은 이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빌리. 어느 점에서도 보더라도, 지극힌 평범한 보통 남자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로부터 쪽지를 한 장 받으면서 느슨하게 조여 있던 삶의 긴장이 폭발해 버린다.

자신이 받은 쪽지의 내용을 경찰에 알리지 않으면 금발의 여선생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자선사업을 할머니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날아든다. 제한시간이 주어지고, 모든 건 빌리의 선택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보이지 않은 적으로부터의 공포가 가장 큰 법이다. 이런 짓을 하는 이가 누군지 그 실마리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부모가 죽고 나서, 포스터 차일드로 자라난 빌리는 조용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병상에는 4년 전, 약혼을 하고 깡통에 든 수프를 먹고 의식을 잃은 약혼녀 바바라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그녀에게 헌신적인 빌리.

협박을 계기로 해서 작가 딘 쿤츠는 빌리 와일스의 삶에 독자들을 조금씩 안내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협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빌리에게 두 번째 쪽지가 날아들고, 더 이상 이 협박이 단순한 공갈이 아니라는 것이 빌리의 친구이자 보안관 대리인 래니 올슨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 협박을 진행하는 보이지 않는 “미친놈”은 빌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나가면서, 결국 물리적 폭력 행사에까지 다다른다. 협박에 이은 두 건의 살인을 확인하고, 심지어 끔찍한 폭행을 당한 빌리는 자신이 접하게 된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친놈”으로부터 받은 궁극적인 협박은 빌리 자신이 자살하게 된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빌리가 처해 있는 모든 정황들은 피해자인 빌리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자신의 가장 취약한 약점인 바바라를 보호하면서, 왜 자신이 이런 사태를 감당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빌리는 목숨을 건 사투에 나서게 된다.

<벨로시티>를 다 읽고 나서, 딘 쿤츠의 전작들을 살펴보았다. 다작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책들이 검색창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후기로 실린 모중석의 인터뷰에서 말해지듯이, 보통남자 3부작 중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벨로시티>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익명의 쪽지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보통남자가 갑자기 미처 자신이 모르고 있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내서 악당과 대결한다는 슈퍼히어로식 설정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하게 살려는 보통남자가 불가피한 극한 상황에 내몰려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를 위협하는 “미친놈”의 정체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단서가 너무나 빈약하다.

“미친놈”은 라벨의 볼레로처럼 주인공에게 공포와 위협의 단계를 서서히 높여 나가면서 독자들이 점차 느끼게 되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휘발유를 끼얹는다. 동시에 작가는 우리가 모르는 빌리의 어두운 과거들을 한 꺼풀씩 벗겨 내준다. 그동안 주변의 타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빌리는 협박이 확대되자, 주변인들을 모두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진술한 완벽한 알리바이는 <벨로시티>의 맛깔나는 함정이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이제 그만!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은 도대체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진행시킨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내면서 지목하는 경우가 있겠고, 작가의 의도대로 결말에 도달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겠다. 그동안 대개의 경우, 후자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벨로시티>를 읽으면서, 그런 정밀한 유추 없이 개인적 심증을 두었던 캐릭터가 범인이었다. 물론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지만. 아마 딘 쿤츠는 그것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두었지 싶었다. 아, 역시 작가가 한수 위였구나.

소설의 제목처럼 <벨로시티>는 속도감이 넘친다. 벡터 물리학의 정의대로, 속도가 넘치면서도 그 방향성도 뚜렷하다. 작가가 준비한 이정표대로 독자들은 한걸음씩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대중성을 겸비했으면서도, 찰스 디킨스나 T.S. 엘리엇 같은 문호들의 코드들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킬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딘 쿤츠의 차기 작품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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