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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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동안 수많은 책을 발표해온 김탁환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에 대한 에세이집을 접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 책을 받아 보기 전에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다고 해서 약간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자그마치 열권도 아니고 100권에 달하는 책에 대한 개인적이거나 혹은 사유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실 작년 가을에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글들을 좀 멀리 하고 싶었었다. 왜냐, 그런 책들을 읽게 되면 어김없이 그렇게 알게 된 책들을 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뒤적뒤적 끼적끼적>의 책자락들을 넘기면서 역시나 다시 한 번 세상은 넓고, 읽을 책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장에 나오는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집착에 담긴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집착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 때는 영화에 집착했었고 또 한 때에는 사진과 낚시 그리고 야구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책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는 멋진 별호를 가진 심노숭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장에 나오는 아니 에르노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는 정직과 가혹한 글쓰기가 눈에 밟혔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이들은 정직해야 한다는 걸까? 그리고 또 가혹한 글쓰기는 무엇인가. 동시에 책읽기에서 독자가 감당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나만의 고전을 만들어 내라고 주문을 했었다. 어떤 책이 아무리 다른 이들로부터 칭송과 환호를 받더라도, 나와 공명하지 못하면 나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도 가지 않을 만한 곳에 가서, 아무도 하지 않을 일들을 하면서 기상천외한 글들을 써내는 다카노 히데유키의 글들이 좋다.

거의 온갖 장르의 책들을 섭렵하다 보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빠질 수가 없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에서 인용한 세상에 온갖 사랑들이 있지만, 똑같은 사랑은 없다는 그의 선언이 가슴이 때린다(93페이지). 아마 인류의 불멸의 주제인 사랑에 대한 글들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이책 더 나아가서는 디지털북이 그 수명을 다하지 않는 한 끊이지 않고 재생산될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사랑들이 차고 넘칠 진 몰라도, 자신만의 유니크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피츠제럴드의 기분 좋은 속삭임.

어려서 헤딘의 전기를 읽으면서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에 나오는 10명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 타클라마칸 사막, 황량한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 그리워졌다.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땅이라고 했던가.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막이건만 왜 그렇게 간절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거창하게 구도를 말하기 전에 앞서 데자뷰처럼 사막에 대한 그리움이 우선한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에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절판이 돼서 이제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책들이 많아서 참 아쉬웠다. 특히 레이 황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와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과 같이 미시와 거시적 측면에서 역사 바라보기의 전범이 되는 연구와 해석을 담은 책들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의 후유증은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어떤 책들을 먼저 구입해야 하는 패닉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내가 모르고 있던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과 책은 읽어도 읽어도 그 끝이 없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알찬 독서의 경험이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사의 -> 사람의 (62페이지)
2. 하연 -> 하얀 (157페이지) : 진은영 시인의 시집 37페이지 확인
3. 「해가 : 우측 낫표가 빠졌습니다 (239페이지)
4. 하는 -> 하지 (25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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