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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2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편에서 두 건이 미제 살인사건과 그 사건들을 풀기 위해 매진하던 안조 세이지 주재 경관의 의문사 그리고 덴노지 화재 사건 현장을 떠나 순직처리조차 되지 못한 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한 아들 다이조의 노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아쉽게도 후속편으로 그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어느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관의 피> 역시 예의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 몫은 세이지의 아들 다이조의 몫이 아닌 듯 싶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관이 된 다이조는 자신이 희망하는 보직인 주재경관 대신에 공안경찰로 발탁이 되어, 뛰어난 공훈을 세우지만 경찰이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본의 아니게 적군파 조직에 몸을 담게 되면서 극심한 자아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공안 임무를 마치긴 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가정불화를 겪게 된다. 한편 아버지의 친구들로 다이조의 후원을 도맡았던 삼총사들은 이제 경찰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다이조의 희망대로 주재경관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준다. 주재경관이 된 다이조는 다시 자신의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발생한지 근 30년 된 사건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재경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다이조지만, 아들 가즈야와는 어머니인 준코를 폭행했던 기억으로 인해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별다른 일 없이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날, 다이조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아버지의 의문사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게 되지만 관내에서 발생한 인질 총기사고로 인해 다이조는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다이조의 뒤를 이어, 가즈야 역시 도내의 국립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다음 경찰에 지원한다.
3대째 경관을 배출한 집안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경찰직에 첫발을 내딛은 가즈야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경시청 본청으로부터 오직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경관에 대한 내사임무였다. 수사과의 능력 있는 경관이지만, 어쩐지 경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고급 세단과 옷차림의 가가야 경부. 그의 수하로 들어간 가즈야는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결말은 다가오는데, 도대체 이 모든 미스터리의 끝을 어떻게 내려고 작가 사사키 조는 이렇게 질질 끄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즈야의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지어지고 할아버지의 의문사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들이 차례로 밝혀진다.
<경관의 피> 상하권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그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전후시대 일본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일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경찰이라는 특정 집단을 주제로 해서 일관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 사사키 조의 구성력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시대상의 변화에 담보된 소설 내의 사건들에 대한 전개 역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3대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소설에서 크든 작든 등장한 인물들을 나중에라도 다시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아 그 때, 그 사람이라고 연상시키는 방법은 정말로 기발했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내던지는 말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큰 줄거리인 미결 살인사건과 세이지의 의문사에 대한 미스터리에 연결시키는 집중력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사회주의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편향적인 사고에 바탕한 흑백논리가 조금은 부담스럽긴 했지만, 너무 정치적이지 않으면서도 중용적인 태도로 이에 대한 논쟁을 살짝 빗겨 나가는 기술 역시 인정해줄만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으로 결말 부분에 가서 너무 쫓기는 듯한 인상으로, 엔딩을 처리한 점이 좀 불만스럽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옥의 티를 하나 꼽자면, 하권 394페이지에서 작가는 안조 세이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인도에 갔었다고 언급을 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북인도라 하면 델리와 캐슈미르 지방을 지칭하는데 아마 이것은 일제의 1944년 임팔-코히마작전을 착각한 기술로 보인다. 굳이 정정하자면, 북인도라기 보다는 동인도라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다.
사사키 조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의 조속한 소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