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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참 책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밥바라기별이라,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이 금성, 샛별의 다른 이름이라는걸 알게 됐다. 모두들 식사를 마치고 날 무렵, 개가 자기도 밥을 바랄 즈음에 보이는 별이라고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나. 마치 책의 주인공인 준 그리고 그 준에게 투영된 황석영 작가 자신이 모습이 느껴졌다. <개밥바라기별>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언가를 희구하면서 살지만 정작 그 무언가를 찾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루어지는 만남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허무적인 방황을 통해 성장해온 우리네 부모 세대의 이야기다.
물론 작가가 말한 대로 그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가로 놓여 있지만, 청춘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 보다. 학교라는 제도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인간상으로 제조되어지면서도 우리의 뜨거운 가슴은 그런 위선과 허울들을 견뎌내지 못한다. 게다가 4월 혁명과 5월의 쿠데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정치적 격랑의 세월과 근대화를 통한 수출입국의 기치 아래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던 세대에게 평범한 삶에서의 일탈은 바로 낙오를 의미했다.
이야기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문학청년의 꿈을 꾸던 준이 월남파병을 앞두고,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한 자조적인 회상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친구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총탄에 맞아 죽는걸 목격한 이들에게, 삶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장이 아니었을까. 고도 성장기의 과정에서, 넘쳐나는 수많은 서적들은 그 어느 누구도 제도화 교육 내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현실들과 만나게 되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몰래 담배와 술을 배우며 성장통을 앓아 나간다.
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학교는 그들을 가두는 울타리였고 족쇄였다. 그들은 학교를 빼먹고 산행을 즐겼고, 연상의 여대생들과 얼치기 연애를 했으며, 서울 인근의 산에 아지트를 만들고 보급투쟁을 한다. 그런 모든 과정들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형상화된다. 때로는 명상을 통해, 때로는 자신만의 절대고독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혼란스럽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앞으로 뭘 해먹고 살 것인가와 같은 생존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들의 성장과정은 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준은 지기 인호와 휴학과 자퇴의 어중간한 선상에 있던 어느 해 여름, 전국을 일주하는 무전여행에 나서게 된다. 어떤 여행의 뚜렷한 목적 없이 때로는 고적답사의 길을 가기도 하다가, 고향에 내려가 있는 친구들의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들의 나름의 모험을 경험한다. 그리고 여행의 말미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여정에 올랐음을 인지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사회는 그들의 장기적인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대학이라는 관문에 들어선다. 다시 제도권이라는 소행성 궤도에 오른 이들의 고민들은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다. 어떤 이는 연애라는 방법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래의 설계로 또 누구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길을 개척해 나간다. 준은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가담했다가 유치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대위 장 씨와 두해 남짓 전국을 떠도는 부평초 인생길에 나선다. 동래에서는 승려가 되기 위해, 행자생활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을 버리려는 시도도 해본다.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다시 삶과 죽음이 확연하게 갈리는 월남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
황석영 작가의 젊은 날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의 그 때는 어땠나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12년간의 제도 교육을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일탈을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런 시도조차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에 가서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들이 일순간에 폭발해 버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순 유치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참 많이도 고민했던 것 같다.
주인공 준을 중심으로 해서, 상진 영길 정수 등 그의 친구들의 시선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의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 한 명이 말하는 것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다채롭기도 하고, 타인의 속마음을 엿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소설 속의 준이 무전여행을 떠나던 시절만 해도, 세상을 경험해 보겠다는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무전여행에 호의적인 시선들이 있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이라는 명목 아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이 되어 버렸다.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낭만을 논하는 것은 정말 “개밥바라기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된게 아닐까하는 자조감이 문득 들었다.
실용, 경제 그리고 취업이라는 살풍경한 키워드들이 점거한, 그야말로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보다 더 격렬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새로운 천년에 이순(耳順)의 나이를 훌쩍 넘긴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누구든지 삶의 본질을 물으며, 이 세상을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