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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에드가 A. 포에 대해 아는 건? <검은 고양이>와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정도. 하지만 이번에 조엘 로즈가 자그마치 18년간에 걸쳐 저술한 <가장 검은 새>를 통해 에드가 포가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시문학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엘 로즈는 뉴욕타임즈를 필두로 해서 LA 타임즈에 이르기까지 많은 매체에 기사를 쓴 바 있다. 그리고 <마이애미 바이스>와 <코작>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쓰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존했던 저명한 작가 에드가 포를 등장시키면서, 미스터리 팩션 소설의 막이 오른다.
<가장 검은 새>는 19세기 인구 35만 명이 살고 있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메리 로저스, 뉴욕의 어느 시가 가게에서 일하던 누구나 흠모해 마지않을 그런 미모를 가지고 있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이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베테랑 상급 치안관인 제이컵 헤이스(올드 헤이스)가 등장한다. 그는 사건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관이라고 믿고 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가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가 이 아리따운 아가씨를 살해했단 말인가? 그와 관련되어 그녀의 전 애인과 약혼자가 수사관들의 용의자 명단에 오르고, 당시 뉴욕 시에서만 3만 명에 달하던 갱들 역시 의심스럽다. 그 와중에 메리 로저스의 약혼자인 다이엘 페인은 자살을 하고, 제3의 인물인 존 콜트의 살인과 뉴욕에서 한가락 하는 갱단의 두목인 타미 콜먼의 살인사건이 겹치면서 스토리 전개는 급물살을 탄다.
여기에 올드 헤이스의 유일한 혈육으로 등장하는 메리 올가 헤이스는 에드가 포의 열혈 팬으로, 메리 로저스 사건에 핵심이 되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쫓는 아버지 올드 헤이스의 보좌역을 자처한다. 에드가 포가 발표한 글들과 그가 자신의 전작들을 통해 보여준 ‘사건의 재구성’이란 방식을 아버지 올드 헤이스에게 전수해주는 올가. 이 북새통에 재판을 통해 사형수가 된 존 콜트와 타미 콜먼을 구하기 위한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면서 존 콜트의 사형집행 당일, 우스꽝스러운 그의 약혼자와의 결혼식에 이어 대화재가 발생되면서 존 콜트의 자살과 타미 콜먼의 탈옥이 벌어진다.
에드가 포 역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작가로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긴 했지만 경제적 곤궁과 죽어가는 자신의 어린 아내 버지니아와 숙모이자 장모를 봉양해야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의 영혼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연약하며, 소설가라기보다는 비평가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면서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는 독자들이라는 강한 우군이 있지만, 성공에의 집념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책 안쪽에 붉은 색으로 채색된 고담 시티의 지도였다. 21세기 밀레니엄 캐피탈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19세기 미국이 건국된 지 채 70년 남짓한 시절의 고담 시티의 전경에 대한 조엘 로즈의 묘사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직 경찰조직이 정비되지 않았던 시기에, 고담 시티 뉴욕은 그 시작에서부터 살인과 폭력이 난무했었다고 한다. 그런 무질서가 횡행하는 가운데, 질서를 확립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지난 40년간 한결같이 범인색출에 투신해온 올드 헤이스의 모습은 에드가 포가 자신의 작품들에서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탁월한 탐정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 작가 조엘 로즈의 주장이다.
아울러 올드 헤이스의 브레인으로 등장하는 딸 올가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에드가 포의 추리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현실에 적용을 하고 신문에 난 기사들을 토대로 해서 보통의 경우 흔히 빠뜨리게 되는 실수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잡아내면서 재구성하는 기술은 여느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에 버금갈 정도였다.
아울러 타락한 도시에서, 사형수마저 금권과 결탁한 일단의 무리들이 사법집행을 방해하고 다수의 죄수들을 탈옥시키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대전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다름이 아니다. 새뮤엘 애덤스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은 존 콜트가 수감 중에 누리는 온갖 특권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유감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존 콜트의 형으로 콜트 리볼버를 발명해서 돈방석에 앉은 콜트 대령은 다가올 남북전쟁에 다량의 총기들을 보급 유통시킴으로써 미국 사회가 오늘날에까지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총기관련 사고들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정당한 사법집행을 방해하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에드가 포에 대해서는 몇 편의 단편소설 외에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책의 분량에 반비례하면서 흥미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엘 로즈는 분명 미국 문학계에 큰 별로 에드가 포를 바라보는 것 같다. 소설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끊임없이 현실세계로부터 도주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작가의 태생적 한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