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 별난 화가에게 바치는 별난 그림에세이
카트린 뫼리스 글.그림, 김용채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짧은 그림 에세이인 <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를 읽다 보니, 옛 중국의 고사인 ‘지음(知音)’이 떠올랐다. 거금고의 명수였던 백아(伯牙)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지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었던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고 했던가.

색채예술의 대가로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봉장이었던 외젠 들라크루아가 죽은 해였던 1864년 12월 우리에게는 삼총사로 널리 알려진 대문호 알렉상드로 뒤마가 들라크루아를 추모하며 발표한 <들라크루아에 대한 한담>을 바탕으로 해서 21세기에 카트린 뫼리스라는 역시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재구성해서 한 편의 책으로 내놓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몇 개의 선으로 그려내는 카트린 뫼리스의 일러스트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1798년에 태어난 들라크루아는 게랭의 지도 아래 제리코와 함께 동문수학하면서 그림을 배워 나갔다고 한다. 그의 화풍은 책에도 나오지만, 당시 고전주의 양식이 판을 치던 프랑스 미술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것처럼 대담한 색채의 사용과 도발적인 주제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색채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는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822년 <단테의 조각배>라는 작품으로 살롱전에 출품을 하면서 일대를 풍미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이 작품에서, 죽음의 강 스틱스를 배를 타고 건너가는 단테 자신과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 뒤를 이어 1824년에 발표된 <키오스 섬의 학살>은 2년 전인 1822년 그리스 독립전쟁의 와중에 그리스 키오스 섬에서 오스만 제국의 의한 학살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등장하는 ‘손’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가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난 영국의 대시인 바이런 경에 대한 들라크루아식의 오마쥬였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들라크루아와 관계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을 한다. 살롱전에 출품을 해야 하는데, 프레임을 만들 돈이 없어서 고생했던 이야기, 오를레앙 공작이 빅토르 위고에서 선물하기 위해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구입을 하도록 뒤마가 손을 쓰지만 선물대상을 모르고서는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뻐팅기는 들라크루아, 평생의 적수였던 앵그르를 체제전복적인 그림들을 그려대는 들라크루아의 대항마로 출전시키는 미술평론계의 편협한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화가로서의 들라크루와 뿐만 아니라 인간 들라크루아의 참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뒤마의 글과 카트린 뫼리스의 절묘한 공동 작업이 너무나도 멋들어졌다.

역시 들라크루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830년에 발표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일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자유의 여신 옆에 나팔총을 가지고 뒤따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이 사람이 바로 들라크루아 자신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뒤마는 들라크루아가 공화주의자였다기 보다는 귀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 가설을 부인하고 있다. 자신과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들라크루아와 그의 예술세계를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대하고, 평생의 지기로 지냈던 이 둘의 우정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1833년 뒤마가 살던 생나자르 가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에서, 뒤마와 그의 화가 친구들이 공동 작업으로 무도회장을 꾸민 이야기는 뒤마가 경험한 들라크루아 예술인생의 백조의 노래처럼 다가온다. 루이와 클레망 블랑제, 알프레드와 토니 조아노, 드캉, 자댕, 바리, 그랑빌 그리고 낭퇴이 등이 그 작업에 참여했는데, 유독 들라크루아만이 무도회가 다가올수록 코빼기도 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할당된 벽면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자는 의견을 들라크루아의 지음 뒤마는 온 몸으로 막아냈다고 증언하고 있다. 뒤마의 기대대로 들라크루아는 밑그림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그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모든 것을 처리해냈다. 뒤마의 표현대로 ‘정말 좋은 시절’의 이야기였다.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길이 남을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지만, 죽을 당시에는 끝까지 시중을 들었던 시종과 가정부만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는 것을 개탄하는 글로 책은 끝이 난다. 정말 들라크루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뒤마의 ‘지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들라크루아의 예술세계에 대해 다시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들라크루아와 로트렉을 헷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마가 남긴 글에, 21세기식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진 이 책을 통해, 19세기 가열찬 혁명과 반동의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리던 시대를 살았던 어느 예술혼에 불타는 작가와의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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