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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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지난 노무현 정부시절의 국가인권위원회와 창비사의 합작으로 모두 해서 10명의 만화가들이 모여 집단창작으로 차별과 인권에 대한 만화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그 책과 만날 수가 있었다, <십시일反>이 바로 그 제목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반대한다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먼저 인권(人權)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기 위해 위키피디아에게 물었다. 인권이라 하면 인간으로서 태어나면서 부여된 그 어느 누구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와 지위에 긍정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건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 관계없이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세계에선 적용되지 않는 일이지만 말이다.

물신(物神) 혹은 맘모니즘(Mammonism)에 입각한 최고를 위한 경쟁과 성공제일주의가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를 아우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차별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1%만을 위한 정부에서는 ‘욕망의 정치’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국민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1세기 신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대량해고와 대규모 실업위기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박통이 경제건설을 지휘하던 시대의 ‘삽질정신’은 성장 위주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의 몰락과 더불어 더 이상 그 유효하지 않은 사회적 패러다임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인 장애우, 외국인 노동자, 여성, 빈민층을 아우르는 모든 이들이 함께 나가는 다양화된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십시일반>에서는 이런 바람과는 달리 전개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화 논리로 제3세계 국가들에서 대한민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들을 채운 그들은, 비인간적인 근무조건과 형편없이 낮은 임금, 체불 등의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고국에 두고 온 형제자매 부모들을 위해 오늘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으니, 외국인 노동자들 혹은 산업연수생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라는 식의 보수 언론에서 쏟아내는 구호들은 오늘 “오마이뉴스”에 나온 한홍구 교수의 국가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그만큼 차별적이다. 여성과 장애우들을 보는 시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생활 수급자들의 현실은 보지 않고 오로지 행정편의주의 위주의 시각으로 다가서는 국가공무원들의 모습에서는 그들이 과연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경험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평수에 의해 어울리는 친구들의 ‘격’이 달라진다는 조남준 씨의 만화 <누렁이 1>이었다. 제도교육에서 그렇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지는 않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자기중심주의적 사고를 어린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5개의 철자로 된 단어로 “class"를 꼽았다. 누구나 부인하지만,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사회계급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부와 재산의 정도에 따른 사회계층화는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학생들에게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됐다.

손문상 씨가 그린 <사회적 유전>을 보면 더 이상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의 ‘공정한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진실을 접하게 된다. 부유층에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방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육비로 무장한 차세대 일꾼들을 양성해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과 해고의 위협에 노출된 그림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은 상황이다. 사회적 성공을 유일한 통로처럼 보였던 교육에서조차, 평등한 기회들은 박탈당하고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정말 암담해졌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제 더 이상 MB정부 아래에서는 이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성찰과 배려를 기대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고난의 세월을 통해 이루어낸 풀뿌리 민주주의가 ‘경제살리기’라는 지상과제에 밀려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회적 진보는 한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지만, 반동에 의한 퇴보의 폐해에 의한 사회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연말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말들 가운데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소액기부금의 행렬이 많았다는 흐뭇한 뉴스 기사를 들었다.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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