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근래 들어 개인적으로 영미권 혹은 일본 외의 제 3세계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지난 여름에 접했던 <엉덩이에 입맞춤을>의 작가 에펠리 하우오파, <곡쟁이 톨로키>의 자케스 음다의 책들을 접하면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그들의 작품세계가 궁금해졌다. 오늘 이야기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의 저자 하산 알리 톱타시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미 우리들에게는 터키 출신의 작가 오르한 파묵이 재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관심을 끈 바 있다. 터키는 우리하고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전 당시 16개 우방국의 하나로서 참전한 적이 있으며,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전에서 대결한 바가 있다. 지리적으로 동양에 속하면서도 유럽대륙에 걸쳐져 있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슬림 국가이면서도 가장 친서방적인 성향을 보이는 신비의 나라 터키. 그 중에서도 터키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고원 출신의 하산 알리 톱타시는 세무공무원 출신의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시간적 배경을 알 수 없는 이발소에서 시작된다.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교차로 등장하는 사건의 주 배경이 되는 어느 마을 이야기에서는 전지적 작가 관점이 배열되면서 이야기는 서두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스터리로 몰아간다. 마을의 이발사 즌글 누리가 아내와 세 명의 자식들을 놔두고서 어느 날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혼이 오그라든다”라는 실존 자체에 대한 질문처럼 보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혀져서 인근 각처를 뒤지지만 이발사 즌글 누리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

이에 읍장이 나서 대도시로 나가 상급관청에 실종신고도 하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지만 누리를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을에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 귀베르진(비둘기를 뜻하는 이름이란다)이 사라져 버린다. 읍장과 파수꾼은 이 사건을 유괴로 단정하고, 젠네트의 아들을 잡아다가 혹독한 고문을 가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고문의 여파로 젠네트의 아들은 바보가 되어 버린다.

계속해서 이야기는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와 중첩이 되면서 점점 일상적인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독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처음에 사라졌던 즌글 누리는 수년 만에 다시 마을에 나타나지만 소설에서 그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그동안 그가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소외된 마을에서는 인간 군상들의 비루한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되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주술적인 이슬람의 종교지도자 이맘에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의 연약함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여타의 터키 농촌 소설을 다룬 책들에서 대개 다루고 있는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결 대신 이 책에서는 철저하게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의 실존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제대로 못 짚어서인지 엇갈리는 두 개의 이야기가 주는 혼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인 이야기의 전개는 철저하게 무시가 되고,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분열과 자기 분석적인 질문들만이 그렇게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첫 문장을 생각하는데 무려 여덟 달이나 구상을 했다는 완벽주의자 톱타시답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묘사들은 탁월했다. 아마도 자전적 경험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실제적 묘사는 영화가 주는 가시적 효과들을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이해력에 많은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 톱타시의 빼어난 창조력과 이야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놀라움이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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