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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 서희태의 클래식 토크
서희태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드라마와 전파방송의 위력은 정말 무섭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다룬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급증하고, 클래식 음반 판매가 호황을 띠고 심지어 악기 판매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대성공은 주연을 맡은 김명민 씨를 비롯한 출연자와 연출가 이재규 감독의 노고도 있었겠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의 꽃은 바로 음악을 맡은 예술 감독의 몫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직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서희태 씨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라마의 감동을 만나 보게 되는 재미와 즐거움이 쏠쏠치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쉽게도 드라마 첫 번째 에피소드 말고서는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의 전개나 극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책을 저술한 지휘자 서희태 씨가 워낙 드라마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설명을 해주어서 캐릭터들에 살을 붙여 가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역시 책의 초반부에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뤘다. 등장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실제 연주와 연출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등장을 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나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 같은 연주자들의 카메오 출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참 재밌었다. 게다가 배우들이 실제 연주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활싱크’처럼 실제 연주와 오디오 싱크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음원의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었었는데, 원작곡자가 모두 사망한 고전 음악의 경우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리베르탱고>나 <가브리엘의 오보에> 같은 곡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드라마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실제 오케스트라와 그 오케스트라에 편성되는 악기들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하는 설명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클래식 음악이 그동안 너무 대중들과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하더라도, 내가 들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할 수가 없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떨어내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은 철저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오케스트라에 편성된 악기들의 이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편성된 악기들의 유래와 오케스트라에서의 역할 그리고 해당 악기에 있어서 당대의 일류 연주자들을 배열한 구성이 지휘자로서의 서희태 씨의 꼼꼼하면서도 완벽주의적인 일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수록된 총 48곡의 클래식 음악들에 대한 선정이유와 더불어 그에 관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 대중적이면서도 유명한 곡들이 많아서 제목은 모르더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을만한 곡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 곡들 중에 개인적으로 다시금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던 리스트의 <사랑의 꿈:리베스트라움 No.3>이 들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군대 시절에 듣게 된 곡이었는데, 그 곡을 연주한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CD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있는 진 모르겠지만 십 수 년 전에 명동의 <디아파송>이나 <부루의 뜨락> 같은 CD 가게들을 찾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드라마에 의한 추진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좋은 양질의 음악들을 계속해서 들음으로써, 개인적 소양을 닦고 더 나아가서는 악기를 연주해 보고자 하는 의욕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한편, <베토벤 바이러스>는 오케스트라에서 그 수많은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봉과 눈빛 그리고 손짓 다시 말해서 상호간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조화와 화합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저자가 초반에 나오는 전도사의 역할을 오로지 전도에만 있다는 한정지었는데 실제 전도사는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자를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진 독일 출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관한 부분에 있어 그가 히틀러 집권 시절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기 전인 1933년에 나치당원이었다는 과거의 오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던 점이 그랬다.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을 혐오했던 브루노 발터, 에리히 클라이버 그리고 아트투로 토스카니니 등은 당시에 아예 파시즘이 판을 치던 유럽을 떠났었다. 아이작 스턴,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그리고 이츠하크 펄만 같은 유대인 출신 연주자들은 그런 이유로 해서 카라얀과의 연주를 거절했었다고 한다. 카라얀이 뛰어난 지휘자이긴 했지만, 동시에 이런 어두운 과거를 가졌던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음악을 들었다. 베토벤이 이 곡을 발표한지 딱 200년 만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알고 음악을 들으니 더 감흥이 새로웠던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진전이 돼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했듯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의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