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승부사들 - 열정과 집념으로 운명을 돌파한 사람들
서신혜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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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년 전의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에 근거한 계급주의 사회였다.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조선 건국 이래의 신분제는 인본주의를 숭상하는 성리학의 근본과 정면으로 대치점에 서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인재들이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꿈과 비전을 펼치지 못하고 그늘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었다.

서신혜 작가의 <조선의 승부사들>은 바로 그런 수많은 숙명 가운데 대표적인 10명의 뛰어난 전문가적인 소양과 능력을 갖추고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이 과거의 인물들을 접하는 가장 빠른 통로는 바로 사극 같은 드라마이다. 과거 인물들 특히 주변인들에 대한 서적들은 거의 찾을 수가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다.

어쨌든 다양한 경로로 통해 접하게 된 장영실, 허준 그리고 김홍도 같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상례전문가 유희경, 임진왜란 시대를 풍미했던 역관 홍순언, 청중들을 위해 기꺼이 연주를 마다하지 않았던 악공 송경운, 출판과 교정의 대가였던 장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요즘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공으로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던 시기에 선조를 모시고 끝까지 천리 몽진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면서 입으로만 국가에 충성을 부르짖던 사대부들의 위선적인 모습들을 통쾌하게 쳐부순다. 물론 그의 성공의 배경에는 세자 광해군의 병과 선조를 모신 것에서 비롯된 군왕의 전폭적 신뢰가 밑바탕이 되긴 했지만, 의술은 인술이라는 자신만의 올곧은 지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불후의 명저 <동의보감>을 편찬하면서 당대의 의술을 한 차원 더 끌어 올린 그의 빛나는 업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바로 책의 말미에 등장한 장혼(張混)이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된 조선대의 출판 및 교정 전문가이자 아동교육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준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신체적 장애까지 딛고, 양반이 아닌 위항자들의 삶과 문화를 책을 통해 후세에 전하는 아주 귀중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까지도 역전시켜 준 그의 눈부신 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편, 이러한 신분상의 제약을 받는 인물들이 활약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의 위기상황들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요소들일 것이다. 조선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던 임진왜란과 삼전도에서의 치욕적인 항복으로 끝난 두 차례의 호란은 조선 후기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대변되는 실학사상의 도래를 예고한다. 이에 더해, 조선 최고의 학자 군주라고 할 수 있는 정조대의 신분을 초월한 인재의 등용이 <조선의 승부사들>에서 펼쳐지고 있다.

<조선의 승부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는건 바로 서신혜 작가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단선적인 인물들의 편린들을 마치 하나의 퀼트 이불을 깁는 기분으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 나거나 혹은 잊혀진 인물들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 부활시키는데 성공한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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