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주제는 무지하게 간단하다, 이 세상의 평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바로 아내에게 순종하고 살라는 거다. 잘 나가는 스포츠카나 4X4 랜드로버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고, 안전하게 아이들을 태우고 다닐 수 있는 미니밴을 타고 다니며(물론 과속은 절대 금물), 맛좋은 육류 대신에 녹색 빛이 들어간 야채들을 먹을 것이며, 나이트클럽? 잊으라! 아내의 권위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지고한 평안과 안락이 남편 그대의 것일지라. 뭐 이 정도로 요약이 되겠다.

옮긴이는 책의 말미에서 1968년 프랑스 학생혁명 이래 부권이 몰락하고 여성권의 신장이 놀랄만하게 진전되었다는 사회분석학적 입장을 친절하게도 설명해 주고 있다. 뭐 그러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는 이 소설/에세이의 마지막 등장하고, 원래 제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남자박물관에 등장하는, 우리의 조상들이라 간주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 가족의 안위와 생존을 책임지던 시절의 남자들의 의무들을 이제는 여성들도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단 말이다.

<오, 나의 마나님>의 저자 다비드 아비께르의 현실에 대한 접근방법은 자신(남성)의 희화화다. 젊어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멕시코와 터키를 누비던 젊은이였었지만, 아내와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더더군다나 두 명의 딸내미들을 낳아 기르게 되면서부터는 여느 중년 남성들이 걷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내의 게(gay) 남자친구를 질투하고, 게이 잡지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멋진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묘령의 아가씨들을 흘끔거리게 되는 전형적인 남성상을 담담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은 에프라임 키숀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라는 책과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키숀의 글에서는 가정의 일상사에서 엿볼 수 있는 재치 넘치는 그만의 골계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 아비께르의 글에서는 앞치마를 직접 두르고 요리라고는 계란 반숙 정도 밖에는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아내의 친구들에게 그럴싸한 요리를 대접하는 21세기 남편 상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삶의 모습을 관조하는 맛이 이 책 <오, 나의 마나님>에는 담겨져 있다. 특히 자신보다 직장에서 더 인정을 받고 무려 120명이나 되는 팀원을 이끌면서, 월급도 더 많이 받는 아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열등감을 경외감으로 치환시켜 유머를 빚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주인공은 아내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계속해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결국에 자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은 가정이라는 것을 소심하게 보여 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 본다면 아마 자신의 가족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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