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
이주향 지음 / 시작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덧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이 저 멀리 스러져 가고, 가을이 다가 왔다. 그리고 이주향 선생의 동서고금의 사랑을 다룬 러브 에세이 <사랑이, 내게로 왔다>와 만나게 됐다. 그런데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사랑은 어디까지나 객체인 것일까? 그 관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나에게 사랑이 왔다는 바로 그 선언. 사랑이 그렇게 나를 찾아 왔다고 “메신저”인 <사랑이, 내게로 왔다>가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33편의 문학 작품 혹은 신화, 구전설화 등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오셀로>에 나오는 오셀로와 그의 아리따운 아내 데스데모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을 해서, 헤세의 <데미안>과 그 짝을 이루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중세 시성이라 불렸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의 사랑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성경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사랑의 텍스트들이 쉴 새 없이 전개된다.

각각의 사랑 이야기들이 그들 고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듯이, 그 사랑의 이야기들을 읽어내고 자기에게 맞게 체화시키는 것도 모두 읽는 이들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아주 어려서 영화로 봤고, 이제는 그 기억마저 희미해져 버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은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러시아의 민속악기 발랄라이카 연주가 빚어내는 진한 페이소스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교양국어 시간에 어느 교수님의 사랑의 정의가 지바고를 떠나는 라라의 모습에서 떠올랐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로부터의 해방이었노라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 프란체스코>를 통해 그린, 성자 프란체스코의 신에 대한 사랑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산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삶 가운데 변화될 수 있는 것과 변화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 때문에, 프란체스코는 하나님에게 그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다. 진실한 신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내던지고 ‘절대가난’을 선택하고 세상의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프란체스코의 모습에서, 너무나 풍족한 현대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궁극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싶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인간의 신분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견주는 교만으로 죽음과 결혼하게 되는 저주 받은 운명을 지게 된 프시케. 하지만 프시케에게 죽음이라는 남편은 바로 사랑의 신 에로스였고, 프시케는 숙명적인 타나토스(죽음)로부터 현세적인 낙원 즉 다시 말해서 사랑을 얻게 된다. 물론 프시케는 금기였던 자신의 남편의 존재를 알려고 하다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프시케(자아)는 계속해서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서 보이는 인간과 신들의 사랑이, 오늘날 현세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가가 공을 들여서 썼다는 각 에피소드 말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가상 인터뷰는, 식사 후에 후식으로 제공되는 감칠맛 나는 매실차 같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혼란스럽거나 혹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 마치 실존 인물들에게 하는 듯한 멋진 인터뷰로 명쾌한 해설로 보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각자가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랑의 방정식은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얄팍한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 같다. 그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이주향 선생의 에세이 <사랑이, 내게로 왔다>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을 보게 되면 또 보유도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너무 좋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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