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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세상 중세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이 흥미롭다, 중세의 가을이라……. 먼저 중세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고 싶어서 위키피디아에게 물었더니 여러 설이 있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훈족의 침입으로 비롯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5세기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5세기까지 약 천 년간의 시대를 지칭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가을’은 작가 이택환 선생의 말대로 쇠락을 상징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중세하면 기독교 문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중세의 그림들에 대부분을 종교화가 차지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 혹은 상상의 세계가 병존하고 있던 중세시대에는,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보다 오히려 더 세속적 욕망에 충실했었다고 한다. 그런 면면들이 당대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작가는 이런 그림들에 대해서, 당대의 시대 문화적 배경들과 도상학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우리들에게 설명해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긴 부활이 대명제였던 중세사회에서, 그들이 기대했던 현실세계에서의 부활이 천년이 다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자 중세인들은 죽음을 그들의 삶 가운데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페스트(흑사병)와 종교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 등은 그런 불가피한 상황들을 더욱 촉진시켰다. 책의 전반부에서 중요한 화가로 등장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중세의 몰락이 예언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보스의 그림에서는 정통적인 기독교 사상에 의거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이교도적인 색채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그가 그린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이미지보다는 종말의 세계에 심판자로서의 역할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피터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 같은 작품에서는 쇠락으로 치닫는 중세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엿보인다.
현대의 문화코드로 보면 더 엄격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중세에 많은 작가들이 성화 가운데 에로티시즘을 섞어 놓았다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큐피드의 그것으로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비너스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종교적 경건함 가운데 중세인들의 욕망들이 들끓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중세 말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의 중세 사회의 질서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행위에는 자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예전에 화가들의 주 고객들은 바로 영주와 주교들과 같은 지배계급이었다. 상업혁명이 진행되고, 부르주아 계층이 등장하게 되면서 예술가들의 패트론들은 바로 이들 부르주아 계급으로 대체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때 등장하게 되는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보수적인 색채로 기존의 영주들이나 사제들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했던 루벤스와 종교개혁적인 프로테스탄트 리버럴리즘을 대표했던 렘브란트의 비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신과 인간이 합일되었다고 생각하던 중세시대에서 공동체적 삶이 아닌 개인의 자아를 찾아가게 되면서 중세는 붕괴하게 된다. 중세인들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던 신학을 개인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이 대체하게 되는 역사적 전진이 이루어진다. 단순하게 중세 예술작품에 대한 소개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중세 전반에 대한 치밀하면서도 명석한 고찰이 바탕으로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 작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신비하면서도 매혹적인 중세를 거닐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