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부재중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오늘 아침에 이 책을 받고, 읽으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143페이지라는 아주 짧은 분량(납작한 소포를 보고 무슨 우편물인줄 알았다)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82페이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주인공 마리오와 블랑카의 대화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두 주인공들 간의 의사소통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에 대한 단적인 예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 소설의 원제는 <블랑카는 떠났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아내는 부재중>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이 소설의 핵심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남자 주인공 마리오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해 마지않는 자신의 아내 블랑카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모두 10개의 이루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현재에서 출발을 해서 현란하게 터지는 과거의 플래시백들을 관통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주인공 마리오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아내는 부재중>은 아내 블랑카가 자신을 떠났다는 마리오의 너무나 비참한 자기선언을 듣기 위해 그 먼 길을 빙빙 돌아온다. 물론 우리는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사랑에 대한 집착인지조차 모를 정도의 그런 극도로 감정이 혼란에 빠진 마리오의 독백인지 구분해 내기가 난감하기 그지없다.

갈등이 빚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을 작가는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의 필연적인 차이점에 있다고 유도를 해내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생래적인 가치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보다 우월하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진 블랑카를 안기 위해 마리오는 기꺼이 독이 든 술잔을 기꺼이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마리오는 잠깐 동안이나마 격정과 열정으로 가득한 짧은 사랑의 진수를 맛보지만, 그는 결코 블랑카를 소유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리오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이다. 결국 마리오는 자신의 삶의 이유였던, 블랑카를 타자화(他者化)시키기에 이른다. 아니 그전부터 이미 블랑카는 마리오에게 타자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리오는 결코 블랑카에 대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리오의 헌신적인 사랑을 바라보는 이 책의 작가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마리오가 자신을 내던지는 사랑으로 블랑카를 감싼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사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일방적인 사랑은 피로와 나가서는 포기에 달하게 되기 마련이다.

도중에 나오는 블랑카의 마리오에 대한 고백(산산조각난 도자기 파편을 다 이어 붙여 주었다는)조차도, 그 기반이 사랑인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해바라기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어느 불쌍한 남자에 대한 동정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같은 제목의 에피소드가 말하고 있듯이, 사랑에 대한 불안은 우리들의 가녀린 영혼을 잠식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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