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버드 -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저명한 전기 작가 피에르 아술린이 쓴 7명의 인물들에 대한 찰나의 미학을 다룬 <로즈버드>를 읽었다. 읽기 전에,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나오는 그 ‘로즈버드’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후기에서는 다시 한 번 ‘멀티바이오그래피’(multi-biography)라고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우리는 보통 전기(바이오그래피)를 읽을 때, 한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보통 평전 스타일의 책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피에르 아술린은 특이하게도 모두 해서 7명의 저명한 예술가, 작가, 저항운동가, 명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어쩌면 그런 찰나적인 순간포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들과는 상이하게 다른.

첫 번째 이야기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문호라는 호칭을 받던 러디어드 키플링과 그의 외아들 존 키플링과의 애증의 관계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조국에 대한 의무와 남자로서의 명예를 가르쳐온 키플링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애국주의에 호소하며 참전을 요구하는 글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지독한 근시로 인해 징병관에게 퇴짜를 맞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위대한 아버지와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들의 관계 가운데,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조우가 기다린다.

세기의 시선으로, 외눈박이 렌즈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열어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저자와의 관계는 좀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실제적 체험만큼 책을 읽는 이들에게 호소력 깊게 다가오는 부분도 없을 것 같다. 부다페스트의 미술관에 홀로 앉아, 고야의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의 데생을 하고 있는 사진의 대가는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보고서도 보지 못하고, 사진을 찍고서도 사진을 보지 못하는 운명의 장난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역시 1981년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로 레이디 다이애나의 에피소드다. 프랑스 특파원 자격으로 현장에서 이 결혼식을 직접 목격한 생생한 현장담을 피에르 아술린은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천년왕실의 황태자비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결혼식을 치렀지만, 과연 그녀는 살아생전에 그 결혼식에서 기대했던 것만큼의 행복을 누렸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 책 <로즈버드>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장 물랭의 스카프>야말로 백미(白眉)였다. 프랑스 공화국의 나치 독일의 탱크 아래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던, 1940년 6월 최연소 도지사로써 저항의 시작이자 그 상징이 된 장 물랭. 국가수반들도 모두가 항복하고 점령군에게 협력하는 마당에, 그는 일개 도지사로 분연히 나치 독일군에게 협력을 거부하고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감금 상태에서 극한의 저항방법을 선택한다.

적군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신화가 된다. “그는 레지스탕스 그 자체”였다는 작가의 선언만큼 더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 비록 고뇌 끝에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 나치의 요구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만큼이나 오히려 그의 신화를 전설로 만들어 주었다. 장 물랭은 이 시대의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전형이다.

찰나의 미학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평가받을만하다. 하지만 너무나 그 찰나에 집착한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독자들 스스로 찾아야하는 불편함이 배어 있다. 장 물랭의 경우에도 그의 장렬한 최후에 대해서 언급이 될 줄 알았지만, 1940년 6월의 사건들에만 치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작가들의 글에서 보이는 현학적인 표현들은,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체화를 어렵게 한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관계들의 나열도, 우리가 아닌 객체로 부유하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타인의 전기를 읽는 것은 어쩌면 모르고 있는 사실들을 알기 위해 떠나는 여로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피에르 아술린의 <로즈버드>는 예의 찰나적인 아름다운 아우라를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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