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형통 - 중국 현대 소설선
톄닝.모옌 외 지음, 박재우 외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토요일 ‘중국 현대 소설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사형통>이 택배기사님의 손에 들려 집을 찾아왔다. 사실 542페이지나 되는 책의 분량이 조금은 많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상 책을 집고 읽기에 돌입하는 순간, 그런 생각은 어디론가 훌쩍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한자제목으로는 길상여의(吉祥如意:좋은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졌다. 보면서 참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여의라는 제목보다는 어감도 좋고,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제목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지난해 한중작가 교류전을 통해 기획된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어, 이번 2008 서울국제도서전람회에 즈음해서 출간하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소설들의 작가들은 모두 중국의 유명 문학상들을 수상한 소위 검증된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톄닝이나 모옌 같이 여러 작품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앞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루쉰 선생 후, 공산화된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문혁이라 지칭)의 암흑기 이래 덩샤오핑이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로 1970년대 말 개방노선으로 중국이 본격적인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을 걷기 시작한 후의 시대상들의 문학적 성과들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고, 본 서 <만사형통>은 그런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고 충족시켜 주었다.

국가사회주의 관료제도 하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빈부 그리고 도농의 격차 그리고 한족(漢族)과는 상이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신장(티베트) 혹은 서북변경의 소수민족들의 삶의 다양성, 시골 농촌지역에서의 벌어지고 있는 교육의 소외문제, 그리고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아가는 현격한 개발과 성장으로 인한 세대 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인들의 너무나도 다채로운 삶의 일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 <만사형통>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13개의 중단편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들을 골라 보자면 다음과 같다. 류싱룽의 <봉황 거문고>, 샤텐민의 <한 쌍의 큰 양>, 둥리보의 <미샹>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실린 판샤오칭의 <가계부>. 다음에서 짧게나마 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봉황 거문고>에서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위 교육공무원인 삼촌 완과장의 배경으로 어느 벽촌의 소학교에서 임시교원으로 출발하는 장잉차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가 부임한 지에링소학교에는 달랑 세 명의 임시교원으로 이들은 모두 정식교원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류싱룽은 자식들의 교육보다는 자신들의 먹고 살이에 바쁜 지역주민들의 삶 가운데 내던져진 주인공의 눈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공평한 교육의 기회와 무상교육의 허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 준다. 현실세계에서의 비리를 참다못한 장잉차이는 상급기관에 투서를 하기에 이르고, 지에링소학교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면서 동료들에게 배척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노력으로 인해 그의 동료들과 마침내 화합을 이루게 되고, 일종의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이루게 된다. 철저하게 소외된 벽지의 소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과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전개를 통해 현대 중국의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한 쌍의 큰 양>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성의 류 부전원이라는 고위관리와 자매결연을 맺게 된 윈난성 오지에 사는 더산(德山) 노인이 그의 호의로 미국산 메리노종 양 두 마리를 얻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류 부전원은 더산 노인이 그 두 마리의 양을 발판으로 해서 자립경제의 모범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지만, 더산 노인의 가정에서는 도저히 그 양을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결핵을 앓고 있는 딸의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소설에서 존과 존스로 나오는 메리노 양들이 어떻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에서 현실성이 결여된 행정정책을 남발하는 뿌리 깊은 사회주의 관료체제에 대한 냉소가 절절이 묻어나고 있다. 결국 인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파탄낼 수 있는 여실히 보여주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현재 서부대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전체 천연자원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서부의 모처를 배경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의 이름인 <미샹>이 전개된다. 물의 지천으로 널린 남부 출신으로 서부개발에 동원한 여인 미샹이 장산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비극적 사랑 끝에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혼전관계로 가지게 된 아이마저 잃게 되며, 마을의 남자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 부분은 일전의 영화 <도그빌>에서 주인공 니콜 키드만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도그빌>에서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지만 소설 <미샹>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런 관계 속으로 뛰어 든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성풍속에 대한 억압과 숱한 민초들의 해방자로 미샹은 환영을 받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들의 반동과 거친 폭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만다.

도농간의 이질적인 괴리와 결합의 희망을 보여준 작품인 <가계부>의 구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단지 가계부의 금전의 출납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쯔칭(自淸)의 잃어버린 가계부에 대한 집착으로 시작된 소설은, 그 가계부의 향방을 찾아 멀리 간쑤 성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연하게 도시로부터 기부 받은 책을(예의 가계부) 기증 받게 된 왕차이네 식구들은 ‘솔루션 세럼’이라는 단어로 인해 도시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되고, 바로 그 가계부의 주인인 쯔칭네 집 근처에 거주하게 된다. 기본적인 가계부에 대한 통념을 혁파하고 다른 개념을 도입한 부분도 기발했지만, 다분한 개연성의 개입이 조금은 눈에 거슬렸지만 그 가계부로 인해 왕차이네 집안이 도시로 이주를 하게 되고, 그 원인을 제공했던 쯔칭과 만나는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맨 끝의 왕차이가 자신의 아들 왕샤오차이에게 던지는 말은 어쩌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이들에게 대한 경고가 아닌가 싶었다.

지난 2천년 이상 우리와 고락을 같이 해온 이웃 중국과 그간 이념과 체제의 차이로 해서 중국 문화에 대해 너무나 경원해 왔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중국 영화들이 세계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도 많이 소개가 됐었지만,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것 같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해서, 새롭고 다양한 중국문학과의 만남을 원한다면 <만사형통>이 제격일 것이다.

* 내가 찾은 오탈자

① 108페이지 : 도망가면도 → 도망가면서

② 424페이지 : 먹으로 → 먹으러

③ 작품해설 540페이지 : 사예디 → 샤예디

                 541페이지 : 마제롱 → 마제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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