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우종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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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두 권의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작품을 꺼내든다. 하나는 <꿈의 궁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가멤논의 딸>이란 책이다. 언제 샀는지 검색해 보니 무려 14년 전에 산 책이다. 그리고 그 동안 난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 결심하고 <아가멤논의 딸>을 읽기 시작한다. 어제 하루 동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정말 작정하고 책읽던 시절이 잠깐 주마등처럼 그렇게 스치고 지나갔다.

 

서론에 프랑스 편집자가 암담한 알바니아의 현실을 다룬 카다레의 <아가멤논의 딸>이 어떻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등장한다. 희대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통치하고 있단 알바니아는 1980년대 당시 사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카다레의 사회비판 소설이었던 <아가멤논의 딸> 역시 국경을 넘을 수가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서방으로 넘어가 금고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이 독재자가 죽고, 철의 장막이 걷혀진 뒤 발표가 되었나 보다. 이런 우여곡절을 품고 있는 책이라니, 놀랍군 그래.

 

소설에서는 지도자라고만 나오지만, 엔베르 호자 시대 어느 노동절 퍼레이드에 초대받은 저널리스트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노동절 퍼레이드는 대단한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 주인공은 애인 수잔나의 빽으로 초대장을 한 장 얻게 된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시스템에서 초대장은 특권의식을 상징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카다레는 소설의 초반부터 대놓고 당시 알바니아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득 담긴 묵직한 어퍼컷을 날린다.

 

참고로 수잔나는 당 고위 간부의 딸이다. 소설 초반에 트로이 전쟁에 나서는 그리스 원정군의 총사령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 공주가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트로이 원정대의 앞길을 가로 막고 나선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으로 이피게네이아가 선택된 것이다.

 

수잔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지도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딸 수잔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노골적으로 수잔나의 희생을 요구한다. 가장 먼저 수잔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인 주인공과의 이별을 종용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에 소속된 저널리스트인 화자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지닌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런 화자의 태도는 친척 아저씨와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앙숙관계를 형성한다. 요즘으로 치면 소위 세대간의 치열한 갈등의 전주곡이라고나 할까. 엔베르 호자가 주도하는 고립주의, 무신론 세계관으로 무장한 알바니아는 유럽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혀 유럽답지 않은 시대에 뒤쳐진 국가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이웃 국가들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데 국가의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알바니아에서는 먹고사니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철지난 이데올로기 투쟁이 만연한 모양이다.

 

화자의 과거 전력도 문제다. 철저한 감시 사회였던 알바니아에서 동료에 대한 밀고와 배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나의 생존과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무고할 수 있다고나 할까. 화자를 비롯한 3명이 취조를 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먼 곳으로 좌천되었다고 했던가.

 

도중에 어디선가 등장하는 <대머리의 추락>이라는 제목의 우화는 당시 암울했던 알바니아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깊은 어둠 속에 추락한 대머리 남자는 독수리에 얹혀 비상하게 된다. 단 조건이 하나 있으니, 비행하는 동안 내내 날고기를 독수리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머리 남자는 독수리와의 비행을 위해 많은 날고기를 준비해서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문제는 날고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의 몸에서 살점을 떼어서 독수리에게 주기 시작한다. 나중에 그의 해골만 남았더라는 이야기.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혼과 육신마저 내줘야 한다는 우화는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아닌가 말이다.

 

엔베르 호자와 비슷한 결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 주가슈빌리도 이피게네이아, 수잔나와 같은 희생의 제단에 배치된다. 독소전 초기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야코프는 19434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 셋의 공통점은 모두 뚜렷한 목적을 지닌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점이다. 카다레 작가는 알바니아 사람들 모두가 독재자와 그 일당들이 선전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다는 말을 빗대어 말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 번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묻게 되었다. 날고기를 공급해야 굴러가는 시스템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급함의 단면들을 <아가멤논의 딸>을 통해 엿볼 수가 있었다. 이런 사유 또한 부질없는 것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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