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기 -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의 한국 호랑이 사냥기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 이항 외 / 에이도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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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역시나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수년간 독서를 하면서, 나름 책을 고르는 취향을 갖게 되다 보니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는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의 독서 편식으로부터 아주 가끔 일탈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도서관 방문이다. 지난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일본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썼다는 <정호기>, 그러니까 한국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기록한 책과 만나게 됐다.

 

1917, 한일병탄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7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본 출신 자산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이른바 정호군을 편성해서 한국에 있다는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야마모토는 인쇄업으로 돈을 번 자본가였다.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아프리카로 사파리 사냥여행을 떠나는 제국주의 시절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야마모토가 편성한 8개 팀의 호랑이 사냥대, 이른바 정호군은 한국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유는 한국에서 호랑이와 표범(한반도에 표범이 살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같은 맹수들이 해수로 규정되어 해수구제 정책의 타겟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반도 곳곳에서 맹수들이 민간인들을 공격해서 실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민생고를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호랑이 사냥은 피해가 발생하는 현지에서는 환영을 받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오락 내지는 여흥 혹은 그들이 숭상하는 무사도의 기상을 세우기 위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분로쿠의 난이라 부르던 임진왜란 당시 2군을 책임진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까지 진출해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그 당시에는 조선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 일부가 된 함경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시작한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대자본가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강용근, 이윤회, 백운학과 최순원 같은 명포수들을 고용해서 정호대를 조직했다. 일본 도쿄를 출발해서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부산에 상륙해서 경성(당시 서울)에 도착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경성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 다음 코스였던 원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탄광 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한 야마모토는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심지어 헌병대까지 나서서 그의 호랑이 사냥을 도왔다.

 

야마모토가 기록한 정호기를 읽으면서 이게 호랑이 사냥인지 유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정호대가 잡은 두 마리 호랑이들은 모두 조선 포수들인 백운학과 최순원이 잡지 않았던가. 특히 최순원은 총에 맞고 굴로 피신한 호랑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잡는데 성공했다. 당시 일본 관헌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무장반란을 두려워해서였는지 총기류 소지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정호대원들에게는 특별히 총기 사용을 허락했던 모양이다. 호랑이굴에 갇혀 결국 포수의 총에 맞아 죽은 불쌍한 호랑이 신세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조선 민중의 신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함경도와 강원도 그리고 전라도 일대에서 수렵한 호랑이, 표범, 수호, 산양, 멧돼지 그리고 곰들을 잡아 개선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대는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제 고관들을 불러 호랑이 시식회를 가졌다고 한다. 남은 고기들은 또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가 그곳에서 시식회를 열고, 자신의 호랑이 사냥 무용담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부를 축적했던 야마모토는 전후 불황으로 사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정호대를 이끌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지 10년이 지나 사망했다.

 

그의 정호대가 잡은 호랑이는 시마즈 제작소에서 박제로 만들어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한국 호랑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저술과 다큐멘터리들이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기>를 읽으면서 들었다. 늦게나마 이런 기록들이 소개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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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3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데헌 열풍으로 한국에서 호랑이 인기가 더욱 높아졌지만 실제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것은 벌써 100년전의 일이네요.
일부에선 호랑이 종의 복원을 꽤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보단 야생동물은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특히나 호랑이는 활동 영역(암컷 400km², 수컷 1000km² 이상)이 넓기에, (한국에 국한하지 말고) 좀 더 대의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지역에서) 러시아,ㅜㅇ국,북한과 협력하여호랑이가 멸종되지 않게 보전에 좀 더 힘을 쏟아야 된다고 여겨집니다.

레삭매냐 2025-10-27 21:56   좋아요 0 | URL
케데헌 열풍을 타고서라도 한국 호랭이
에 대한 재평가과 다양한 연구가 이루
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호랭이들의 활동반경이 어마어마하네요.
사라진 녀석들보다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랭이들의 보전에 힘을 써야 한다는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