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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08/pimg_7234051034597162.jpg)
늘상 하는 생각이지만 나에게 도서관은 보물창고 같다고나 할까.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고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이 콜롬비아 저널리스트 출신 글쟁이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의 <한국에 삽니다>란 책이었다. 원어로는 아마 그 뜻이 아닐텐데... 스패니쉬를 모르니 알 수가 있나 그래. 대충 <봄에 온 노트> 정도인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우리네 일상에 대한 스케치는 흥미로웠다. 펼쳐들었을 때는 당장에라도 읽을 것만 같았지만, 또 너튜브도 보고 또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온갖 뉴스에 휩싸여 있다가 어제 저녁에 분발해서 다 읽을 수가 있었다. 2014년에 발표된 책이니 아마 그 즈음의 시절을 다루지 않았나 싶다. 북한에서는 계속해서 미사일을 쏴대고, 콜롬비아 대사관에서는 자국민들의 대피를 걱정하던. 처가댁인 부산을 떠나, 서울 이태원에 둥지를 튼 국제부부의 고단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미스터 솔라노는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어먹고 살겠다는 결심으로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타향살이에 일견 무모하게 도전한다. 참, 그가 쓴 글을 부인인 이수정 씨가 번역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스페인어로 쓸까? 아니면 영어로 쓸까. 보아하니,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다국적 노마드 같은 작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원에서 일거리를 맡기도 하고, 또 단편 영화의 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에 정착한 얼치기 이방인이 아닌 쏘주와 김치찌개를 즐길 줄 아는 수도(pseudo) 코리언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또 동시에 드는 생각이 아무래도 한국 독자들도 상대해야 하다 보니 아주 신랄하게 한국 정서를 비판하는 글은 좀 자제해서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쓰기는 애시당초 존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아 그를 통해 독일 작가 빌헬름 게나치노를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냉큼 달려 나가서 절판된 게나치노 작가의 책을 사들였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전개, 대환영이다.
책의 어디선가 미스터 솔라노가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를 닮았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궁금해서 그의 사진을 검색해 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굳이 사실을 확인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지. 책에서 만난 사실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닌가 싶어서.
무슨 일이든 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제는 한국에 사는 이방인 뿐 아니라 이 땅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족쇄 같은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아무래도 이방인이다 보니 그게 쉽지 않은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한국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은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 또 기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관영방송이라고 그렇게 욕을 먹는 KBS에서 다양한 언어의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세계 각처로부터 다양한 내용의 편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흥미로웠다. 한국 아내를 구해주세요부터 일자리 그리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독서쟁이들이 계속해서 책을 가까이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방송국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해남 여행에 나선 부부의 이야기도 재밌다. 그 여행길에 그는 오늘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었지 아마. 진부하지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오늘 쓰리닷커피에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조금 행복하지 않았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돈과 지겨움 그리고 날씨 때문에 싸운다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사람살이는 어디서나 다 비슷하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역시 책에서 소개된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 레너드 코헨의 <부기 나이트>를 듣는다. 코헨 특유의 늘어지는 목소리에 잔잔하게 깔리는 베이스 라인이 이 추운 겨울밤에 참 어울리는구나 그래. 동시에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느끼는 절대적 고독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여름에 즐기는 냉면(콜드 누들) 먹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우리의 미스터 솔라노는 아마 예외인 모양이다. 이미 코리언 패치가 된 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나 그래. 참 애덤 존슨이라는 작가의 <고아원 원장의 아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절판된 책이라고 하네. 내일 도서관에 가게 되면 한 번 빌려다 조금이라도 봐야지 싶다. 분량이 700쪽이나 되네. 책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미스터 솔라노가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쪼록 글로 벌어 먹고살겠다는 그의 “미친 생각”이 성공을 거두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