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 거문도 Crisis와 방곡령 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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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 선생은 본격 한중일 세계사 권마다 두 개 정도의 굵직한 사건들을 메인 테마로 삼지 싶다. 15편에서는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그리고 그 전편에 해당하는 14편에서는 거문도 크라이시스와 방곡령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 근대사에 대해 다시 공부하게 됐다. 국사 공부하던 시절에도 안하던 공부를 이렇게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놀랍지 않은가. 바로 이게 책의 힘이지 싶다.

 

15편에서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해 공부했다면, 그 전편이 14편에서는 19세기 내내 영국와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에 대해 아주 살짝 맛만 보게 됐다. 영국은 1803년부터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1세기 가까이 진행된 러시아의 남진 정책은 러시아가 동방에서 영국의 대리인이었던 일본 제국주의에게 패배(러일전쟁)하고 1907년 영러협약으로 종식될 때까지 계속됐다.

 

그중에서도 1885년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판즈데에서 시작된 양국의 충돌은 전면전 위기까지 치닫고 있었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은 판즈데 위기로 29년 먼저 시작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1858년 영국의 보석이라 불린 인도를 사수하기 위해 영국 내각은 전시자금 1,100만 파운드를 조성하고 판즈데에서 러시아군을 상대하기 위해 병력 동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럽의 또다른 열강 프랑스와 독일은 영국와 러시아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엉뚱하게 동방으로 튀었으니, 조선 남쪽바다에 나타난 영국 함대가 느닷없이 1885415일 거문도를 무단 점거한 것이다. 과연 식민제국주의 모국 다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 영국군은 제국주의 종주국답게 후발 주자들처럼 가혹한 약탈이나 깡패짓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국 신사(?)다운 무단점거라고 해야 할까.

 

조선이 한반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조러 비밀협약을 맺었고, 조선은 유사시 거문도를 러시아 함대를 위한 석탄보급기지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국이 선수를 친 것이다. 9월 경, 어찌어찌해서 판즈데에서 벌어진 영러의 첨예한 갈등이 봉합되고 영러전쟁 위기를 넘기게 된다.

 

다음은 갑신정변에서 청군에게 한 방 먹은 일본의 내정이 다뤄진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계를 주름잡는 사족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조슈-사쓰마-히젠-도사 네 개 번 소속 인사들이 메이지 원훈의 자리에 올라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개항 이래 일본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의 개정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일본을 서구 열강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서구 세력들이 일본이 원하는 것을 내줄 리가 만무했다. 일본은 당대 최강국 영국과의 외교에 전념하면서 영국이 불평등조약을 개정해 주면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영국과의 외교에 전념했다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1889년 일본 국왕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제 아래서 서구식 헌법을 발표하고, 다음에는 총선거를 실시해서 형식적 근대화를 완성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파벌정치의 화신이자 일본 군국주의의 시조새라고 부를 수 있는 야마가타 아리토모(3대 총리대신)1888년에 발표한 독트린에 의하면, 일본 본토를 주권선 그리고 한반도를 이익선으로 규정하면서 정한론의 후예로 장차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군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태평양전쟁 당시, 절대방위선 운운하던 대본영의 군국주의자들의 그것과 결을 같이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막 출범한 의회의 대장성 관료들은 경제개발에 중점을 둔 예산을 짜고 싶었지만, 야마가타를 필두로 한 군국주의자들은 부국강병이라는 기치 아래 군부가 국가 예산을 먹어치우게 되는 시스템을 획책했다. 수년 뒤에 벌어진 청일전쟁의 전쟁배상금으로 벌어들인 2억냥(청나라 2년치 예산, 일본의 4년치 예산)을 종자돈으로 삼아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해 결국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전쟁 약발의 맛을 잊지 못해 패전이라는 국가적 망신을 당할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제는 일본의 경제침탈에 맞선 방곡령 이슈다. 1889년과 그 다음해인 1890년 황해도와 함경도 일원에서 조선의 쌀과 콩을 입도선매해서 일본으로 수출하려던 일본 상인들에 대해 지방관인 관찰사들이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내리면서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갑신정변 이래, 청이 조선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다면 일본은 인천과 원산 그리고 부산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 영역에 치중했다.

 

당시 일본은 산업혁명으로 영국에서 생산된 세계 최고 품질의 면직물을 수입해서 조선에 되파는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나는 쌀과 콩을 헐값에 사들여 본국으로 송출했다. 어기 왠지 훗날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자국의 부족한 식량생산을 메우기 위해 조선의 식량자원 수탈의 전주곡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일본에 대항해서 황해도와 함경도의 관찰사들이 내린 방곡령이 항일운동의 하나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 방곡령 시행의 취지는 좋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지방 수령들과 아전들의 재테크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은 곡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을에 방곡령을 내려, 곡식 가격의 하락을 유도해서 헐값으로 사들였다. 그런 다음, 곡식이 부족한 춘궁기에 비싼 값에 판매해서 폭리를 취하는 방식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 이것이 조정 대신들부터 시작해서 지방 수령은 물론이고 아전들까지 모조리 썩은 조선의 실체였다. 오죽했으면 다음 편에 등장하는 동학농민운동 기치 중의 하나가 (탐관)오리척결이었겠는가 말이다.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백성을 일본 상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콩에 대한 방곡령을 내렸다고 하지만, 조병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탐관오리 가운데 대표선수라 할 만하다. 고부군수 조병갑과 사촌간으로 뇌물죄와 공금횡령으로 5번이나 중앙정부로부터 문책을 당하면서도 고위관리직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혹설에 의하면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명성왕후의 비선실세였던 진령군과 절친한 사이였다는 말이 있다. 국가의 기강이 이런 식으로 허물어져 가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어쨌든 조선 지방관들의 방곡령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측의 손해배상 요구로 막대한 조선 조정은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다.

 

그 외의 소소한(?) 사건으로 1891511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 제국의 후계자 니콜라이 로마노프 황태자를 시가현 오쓰에서 일본 순사 쓰다 산조가 암살하기 위해 습격한 일화에 대해서도 작가는 설명한다. 망상에 빠진 쓰다 산조가 칼로 황태자를 공격해서 부상을 입혔다. 어쩌면 러시아와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그런 사건으로, 일본 조야를 뒤흔들었다. 황태자 사건에 사죄하기 위해 어느 여성을 자결하고, 전국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사죄하는 편지들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쇄도했다. 메이지 국왕까지 나서서 교토행 열차에 올라 황태자에게 사과하는 쇼가 연출되기도 했다.

 

국사 사건으로 대법원 단심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살인미수죄를 적용해서 쓰다 산조에게 대법원장 고지마 고레가타는 모두가 원하던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일본 정계를 주무르던 번벌 출신 원훈들은 사형 선고를 내리라고 공공연하게 사법부에 압박을 행사했지만, 대법원장은 삼권분립을 내세우며 우직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당연히 러시아 측에서는 노발대발했지만 일본 외무대신을 경질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무마되었다.

 

굽시니스트는 가상 역사전개를 펼쳐서, 니콜라이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보다 온건한 다른 황위 계승자들이 제위에 올랐다면 1차 세계대전 중에 혁명으로 제국 자체가 사라져 버린 러시아의 운명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18917월에 청나라 북양함대의 주력함인 정원과 진원을 필두로 한 6척의 함대가 일본 요코하마에 내항한다. 거함거포 시대, 자신들보다 월등한 전력의 북양함대의 전력을 직접 목격한 일본은 미래의 가상적국 청나라를 앞서기 위해 다음해부터 막대한 세금을 들여 함대 건설에 나선다. 이 때, 청나라 함대에 승선해서 청나라 함대의 어수선한 분위기, 돼지나 닭을 배에서 기르고 함포 포대에 빨래를 너는 모습에 경악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3년 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 북양함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역시나 많이 배웠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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