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실망시키기 - 터키 소녀의 진짜 진로탐험기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오즈게 사만즈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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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좀 빌린 지가 되었는데 지난달 말일날 꼼수로 한 권이라도 더 채우려고 읽기 시작했다가 회사에 두고 오는 바람에 나의 계획은 성사되지 않았다. 하루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3일이 걸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비슷한 처지였던 마르얀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생각이 났다. 오즈게 시만즈가 아타튀르크의 유령과 군사 독재가 횡행하던 1980년대 터키의 현실을 그렸다면, 사트라피는 회교혁명 이후 이란의 갑갑한 상황을 다뤘다.

 

어린 오즈게 시만즈는 언니처럼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어려서부터 몽상가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학교에 갔더니, 터키의 국부로 칭송되는 아타튀르크 칭송에 여념이 없다. 한 때 전세계를 호령하던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고, 국가가 열강에 의해 분할될 위기에서 터키 국가를 지켜낸 영웅이라고 모든 이가 말한다. 이웃 그리스와의 전쟁에서도 이겼다고 자랑한다. 나라의 입장마다 다르겠지만, 자신들이 그리스를 400년간 식민 지배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라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서도. 그것도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선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펠린과 오즈게의 부모님들은 지식인 계급 출신으로 좌파 성향이다. 아버지는 고아여서 그런진 몰라도,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한다. 아니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랬던가. 사만즈 집안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기에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됐다. 언니 펠린은 일찌감치 철이 들어, 아니면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더더욱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터키에서 일류대학이라는 보스포러스 대학에 진학해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은행 직원이 된다.

 

한편, 주인공 오즈게도 열심히 공부해서 언니의 뒤를 따라 보스포러스 대학에 진학에 성공했다. 문제는 오로지 일류 대학 진학이 목표였기 때문에, 전공을 비교적 커트라인이 낮은 수학과로 정했다는 점이다. 그전에 재학하던 이스탄불의 학교에서 계속해서 정학을 당하지 않았던가. 뭐랄까 목표 없는 십대 청소년의 전형적 일탈이라고 해야 할까. 관심도 없는 수학 대신 연극 공부를 하고 싶어하지만, 이러저러한 사회적 제약과 두 가지 공부를 병행하는 건 어쩌면 예정된 실패의 예고가 아니었을까.

 

대학에서 고군분투하는 오즈게 사만즈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젊은 시절 경험 부족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모습이 보였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막상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이루기 위해서는 젊은이에게 어쩔 수 없는 혼란과 방황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는 말일까. 내가 오즈게였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보니 평소에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지만, 일과 후에는 책쟁이로 변신해서 책을 탐하고 읽은 책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삶의 균형 맞추기란 너무 어려운 미션이지 싶다.

 

사실 <당당하게 실망시키기>를 다 읽고 나서 오즈게 사만즈의 그후가 궁금해졌다.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던 십대 소녀는 결국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자신의 꿈을 찾게 된 게 아닐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국 그리고 반대로 자신의 꿈을 성취시켜 주는데 성공한 타국의 거리는 오즈게가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하면서 어린 시절 즐겨 보던 그리스에서 송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만큼이나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정신없는 가운데 리뷰를 적다 보니 고갱이가 다 휘발해 버린 느낌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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