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의 봄가을
우메자키 하루오 지음, 홍부일 옮김 / 연암서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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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작가의 새로운 책만큼이나, 모르는 작가의 책도 즐겨 읽는 편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우메자키 하루오 작가의 <낡은 집의 봄가을>도 그랬다.

 

반전소설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번에 만난 소설집 <낡은 집의 봄가을>에서는 내가 기대했던 강렬한 반전 메시지보다는 그냥 전후 일본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그런 소설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강렬한 한 방 대신,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에 대한 조망이라고나 할까.

 

기세 좋게 태평양 바다를 모두 집어 삼킬 것 같았던 일본이 망조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걸린 시간은 딱 6개월이었다. 결국 세계의 공장 미국을 상대로 한 물량전은 일본의 참담한 패전으로 귀결되었다. 일본군은 2백만 명이 그리고 미군은 40만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민간인들의 피해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우리는 지금 먼 서쪽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그야말로 실시간 중계로 보고 있지 않은가.

 

우메자키 하루오 작가는 전쟁의 원인이라든가 전후 일본의 비참한 모습 대신, 점령군 사령관이자 일본 총독 맥아더 아래서 진행되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기묘하게도 화자들은 예술가 그 중에서도 화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일상을 화폭에 담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이라는 저자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일까.

 

전쟁에 대한 기억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일까. 전쟁에 나간 사이, 종군한 남편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부인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어느 화자는 인근 주점에서 일하는 구미코라는 아가씨에게 눈독을 들이는데 유부남 라이벌이 등장해서 피곤하다. 라이벌이 주점에 진 거금의 외상 술값을 갚아 주는 조건으로 구미코 씨에게 단독 대시를 하고 결혼에 골인하지만 새색시는 폐렴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부인이 죽은 뒤 발견한 일기장에서 SS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죽은 부인에 대한 의처증에 빠지는 남자. 이러한 아이러니는 전쟁 중에는 반드시 격멸해야 하는 미영귀축이라 부르며 경멸하던 적군이 점령군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한 일본인들이 품을 수밖에 없었던 양가적 감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표제작인 <낡은 집의 봄가을>에서는 왠지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스토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 요즘 말로 하면 전세사기 혹은 부동산 매매사기를 당한 두 남자가 한 지붕 아래서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되는 그런 서사가 중심에 서 있다. 일본 시민들을 전쟁으로 내몬 전쟁지도부는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몇몇 전범들을 처벌하고 무사히 살아남아 다시 부귀영화를 도모했다. 원폭을 필두로 미군의 전략 폭격에서 살아 남은 시민들은 자신들을 그런 비참한 상황에 내몬 이들을 다시 지도부로 모시고 미군의 군정이라는 지붕 아래 좋든 싫든 살아야 했다. 무엇 하나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고, 역사의 청산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재에까지 도달한 그네들의 역사의 부조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곳곳에 묻어 있는 그런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 <기억>도 인상적이다. 술에 취해 지인과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나는 길이 좁다는 이유로 집 앞까지 가기를 거부하는 택시기사에 대한 항의를 한다. 나라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텐데. 요즘 같으면 SNS에 올라갈 만한 그런 이야기일까나. 화자는 좀 더 적극적으로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서 컴플레인을 한다. 그리고 그 회사의 담당자는 그날의 택시기사를 데리고 화자를 찾는다. 거의 억지 사과를 받은 화자는 과연 기분이 풀렸을까? 진심이 1도 담기지 않은 사과라면 나는 안 받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온 화과자도 먹지도 않고 버렸던가, 불살랐던가. 그리고 다시 택시기사와 승객으로 만난 이들은 장기로 신켄쇼부에 들어간다. 웃기는 짜장들이 아닐 수 없다.

 

, <기억>에서 포인트 중에 하나는 자신이 택시기사에게 품은 불만만 뚜렷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기억들은 하나도 선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의 불만 역시 정당한 걸까? 아마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상대방의 유능한 변호사는 화자의 불투명한 기억을 공격하면서 승소를 이끌어 내지 않았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품어 보기도 한다.

 

마지막의 두 꼭지 낚시 이야기는 한 시절, 어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낚시에 미쳐 살던 때 생각이 났다. 이야기의 화자는 건장한 청년이라면 모두 전선이나 공장에 나가 전쟁을 치러야 하던 시절에 병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바다의 돌제에 나가 세월을 낚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갯지렁이 같은 낚시 미끼 때문에 오해를 사고, 툭탁거리는 장면을 보니 내 고등어 미끼를 물고 푸른 바다 위를 날던 갈매기 생각이 났다.

 

살아 꿈틀거리는 갯지렁이를 잘못 끊으면 내 손가락들을 가차 없이 물기도 했었지. 광어 녀석들은 미끼를 물고도 모랫바닥에 가만있어서 계속해서 낚싯줄을 올려 봐야 했고, 경박한 도미들이 미끼를 물어대는 어신의 맛이란 정말! 날카로운 이빨의 우럭의 추억도 쏠쏠했다. 이렇게 문학의 힘이란 나의 기억의 저장고 어딘가에 고이 잠들어 있는 추억을 펄떡거리게 만드는 그런 마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동료 낚시 단골이 어떤 사내들에게 잡혀 가는 장면으로 소설집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 않나 싶다.

 

우메자키 하루오는 거창한 반전 메시지 대신, 패전의 상실감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가운데 소소한 일상들을 포착하는데 주력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무언가 획기적이고 알싸한 맛을 기대한 나 같은 독자에게는 싱겁다고나 할까. 어쩌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 대신 회피 기동을 선택한 그들 문학 세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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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3-24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궁금한건데 매냐님은 어느 나라의 책하고 코드가 잘 맞는 편이신가요? 꼭 선택한다면요 ㅋㅋㅋ 전혀 편독이 없으셔서 궁금해요.

레삭매냐 2022-03-24 16:27   좋아요 2 | URL
잡식성 책쟁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추론해 봅니다 :>

전 개인적으로 라틴쪽 작가
들이 코드에 맞는 느낌입니
다.

루이스 세풀베다, 바르가스
요사 그리고 로베르토 볼라
뇨 등을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