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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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좋아한다. 벌써 17번째라니 미처 몰랐다. 그 중에 박민규 씨의 작품, 윤고은 그리고 주원규 씨의 책들을 읽었고 그 참신한 아이디어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겨레문학상이 내 머리에 각인한 보증수표라고나 할까. 재밌게 읽을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예상과 기대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9년 전의 쓴 리뷰의 재탕이다. 출판사도 재탕을 하는데 독자의 리뷰라고 안될 게 무엇이겠는가. 박민규에 대한 감상은 철회한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타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작가를 손절해 버렸다.)

 

신예작가 강태식 씨의 <굿바이 동물원>은 자본주의 4.0 시대에 가장 무서운 공포로 시작된다. 바로 실업! 아무리 고단한 직장인의 삶이라고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인공 김영수는 몸으로 보여준다. 밥벌이를 위해 벌어오는 금전의 부재는 바로 가장의 권위부터 박탈한다. 주변에서 가난에 장사 없다는 말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듣는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김영수는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부업전선으로 내몰린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을 빨간 대야에 가득 담긴 마늘을 까며 훔치기도 하고, 인형에 눈붙이기를 하다가 본드에 중독이 돼서 우주를 유영하기도 한다. 웃음보다 어째 이 시대 남성의 비애가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이려나. 책 띠지에 실린 대로 능숙하게글을 써제끼는 이 작가는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도 아주 능숙하구나.

 

이 정도로 워밍업을 한 다음 작가는 김영수가 얼마나 코너에 몰렸는지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었다! 그 다음에 그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정규직을 닮은 그 무언가로, 김영수는 동물원에 취업했다. 체력 테스트를 위해 한 달간 꾸준하게 몸을 만들어 라이벌 아줌마를 제끼고 어렵사리 얻은 김영수가 얻은 일자리는 무얼까? 설마설마하던 상상이 그대로 재현이 된다. 돈을 지불하고 동물원에 입장한 관람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인간이 그리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김영수가 최근에 획득한 일거리다.

 

(, 그리고 보니 이거 언젠가 영화인지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나?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다. 나는 그런 닝겡이다. 예전 같은 투철한 리뷰의 열정이 식어 버렸다고 해두자, 다 귀찮으니깐!)

 

그렇다, 그는 인간 마운틴고릴라로 위장해서 자아와 세상을 속이는 데 앞장선다. 그와 그의 동료 만딩고, 조풍년 아저씨 그리고 앤 모두 사람답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들의 희망과 염원을 가차 없이 짓밟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강태식 작가는 어쩌면 동물의 왕국이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썰을 슬쩍슬쩍 흘리기 시작한다. 성과급을 올리기 위해, 고소공포증과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부저를 누르는 인간 고릴라들의 모습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우리네 모습으로 그대로 치환된다.

 

강태식 작가는 조풍년 아저씨, 앤 그리고 만딩고의 순으로 김영수의 동료들이 품고 있는 알토란 같이 흥미진진한 그네들의 과거사와 미래의 꿈을 들려준다. 그렇지! 아무리 이 세상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더라도 그런 희망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신예 작가라고 하는데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이미 책에 몰입된 독자의 심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수완이 대단하다. 다만, 세렝게티 동물원 고릴라 사의 우두머리 만딩고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재밌는 있었지만.

 

역시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재미는 세렝게티 동물원의 전직 동물직원인 소생이 등장해서 평온하던 인간 동물들에게 던진 작은 파문이다. 이제는 여행사 직원으로 변신한 은근과 끈기의 대마왕 소생은 동물직원들의 박대에도 굴하지 않고, 지긋지긋한 세금과 각종 공과금 그리고 속세의 모든 번민과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을 세렝게티 동물원에 소개한다. 가장 먼저 만딩고가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멀리 아프리카 콩고의 정글로 날아가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로 다른 동료들을 꼬시기 시작한다. 한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썼다는 작가의 냉소주의가 신념, 확신 그리고 슬픔의 삼위일체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 정말 멋지다!

 

작가는 인간적이라는 낱말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블랙 유머와 약육강식을 상징하는 극적 무대인 세렝게티 동물원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상생이 아닌 무한경쟁의 과정을 거치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 뽀개기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너무 진중한 주제이기 때문에 곁들여지는 깨알 같이 재미지는 에피소드의 무차별 살포도 잊지 않는다.

 

<굿바이 동물원>은 카카오가 많이 들어간 초콜릿처럼 그렇게 달콤씁쓰름하다. 처음엔 달콤하지만, 뒤에 가서는 진한 슬픔으로 변하는.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또 그 작가의 무한한 문학적 오딧세이를 기대하게 돼서 즐거운 한여름 밤의 추억이었다.

 

*** 무려 9년 전에 읽고 쓴 리뷰를 개정판 발간에 즈음해서 울궈 먹는다.

뭐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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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1-05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다시 써주시니 저처럼 이 책을 놓친 사람이 우와 하면서 책을 주워담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06 08:09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드라마인지
영화가 생각이 나는데...
가물가물하네요.

붕붕툐툐 2021-11-05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르겠습니다만, 카카오 많이 들어간 초콜릿은 먹겠습니다~ㅎㅎ
(하하, 울궈 먹은 페이퍼니 너그러이 봐 주시겠죵~ㅎㅎ)

레삭매냐 2021-11-06 08:10   좋아요 1 | URL
책은 아주 재미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유의 블랙 유머가 폭발케미-

그러믄요, 울궈 먹었으니깐요.

붕붕툐툐 2021-11-07 00:08   좋아요 1 | URL
아~ 블랙유머 좋아하는데~~ 읽어봐야겠네요!!ㅋㅋㅋㅋ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