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부드러움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 / 북스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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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조각들>을 읽고 나서 바로 내리 달렸다. 이번에는 마리옹 파욜의 <돌의 부드러움>이다. 알라딘 이웃님의 포스팅을 보고 나서 아마 도서관으로 냉큼 달려가 빌린 책이다.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파욜 작가의 책이 두 권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연말에 연간 독서 권수를 늘려 보겠다는 아주 얄퍅한 계산도 들어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냐만서도.

 

<돌의 부드러움>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아버지가 폐를 한쪽 잃고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던가.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그런 무기력한 존재로 변신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시절 절대자로 군림하던 이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배우자로서 그리고 자식으로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어디까지가 정답일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을 해 보니, 돌아가실 즈음해서 치매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던 손주도 못 알아보시고, 며느리도 못 알아보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같이 지내던 사촌 동생이 임종까지 했다고 했던가.

 

아버지가 코부터 시작해서 입술 그리고 눈까지 잃어 가는 과정을 작가는 차분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상실의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아마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냥 경황 중에 그 모든 게 지나가길 바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실감은 아주 나중에 그렇게 찾아오길 바랄 뿐.

 

흰 옷 입은 병사들의 등장은 아빠를 돌보는 파욜 가족에게 위기로 작동한다. 파욜 가족은 속수무책이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결국 그들은 결정한다, 그들 스스로가 흰 옷 입은 병사들이 되어 아빠를 호위하기로.

 

왕좌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아빠가 곧 삶의 무대에서 퇴장할 거라는 걸 가족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기에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쿠데타를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갖가지 변명거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세월이 사람의 모난 성정을 다듬어 준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정이 둥글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자고로 나이와 술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니까 말이다. 내 젊은 날의 모습과 지금의 그것은 너무도 다를 테니까.

 

이건 여담으로, <돌의 부드러움><관계의 조각들>보다 3,000원이 싸다. 그 차이는 어쩌면 프랑스문화원의 도움차이 때문이려나. 분량도 두 배 정도 되고, 글밥도 더 많은데 싼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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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3 00: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덩치크고 뾰족한 말투로 항상 상처를 주었던 돌, 그 돌이 작가 아버지네요 그돌이 아버지에 병마 일수도 있고 ㅜ.ㅜ

레삭매냐 2021-01-03 12:46   좋아요 3 | URL
오! 중의적인 해석~
고저 놀랍습니다...

페넬로페 2021-01-03 0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죽음앞에서는 모두가 나약해지죠~~
본인도 우리들도요^^
왜 죽는걸 다 알연서도
그렇게 나쁘게 행동할까요?

레삭매냐 2021-01-03 12:48   좋아요 4 | URL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모름지기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의도적
으로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