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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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외출을 마친 뒤, 집에 와서 쉬다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나섰다. 아무래도 기한 내에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반납도 하고 <사브리나>라는 그래픽 노블을 빌리러 갔다. 폐관 20분 전에 부리나케 도착했다. 빌릴 책들을 에코백에 담고서 신착도서 코너를 돌아보았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7>이 눈에 띄어서 빌려왔다. 원래 목표했던 <사브리나>보다도 이 책에 더 관심이 가더라.

 

내가 일본의 무진 전쟁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건, 18년 전인 2002년 여름 첫 번째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 때 한참 <바람의 검신>에 빠져서 막부말의 격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슈에서 시고쿠로 넘어가는 아카시 대교가 보이는 다루미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숙소에서 만난 일본 청년 그리고 다음날 세미나에 참가할 예정이라던 교수님과 내가 사서 쟁여둔 비루를 마시면서 대담을 나누다가 처음으로 보신전쟁(무진전쟁)이니 세이난전쟁이니 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듣게 됐다. 그리고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때 추억이 굽시니시트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바로 소환되었다.

 

이번 여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 이야기를 읽었는데, 겨울에는 어떻게 해서 265년 역사를 뒤로 하고 에도 막부가 망하게 되었는지 읽게 됐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모양이다. 9권이나 나온 시리즈 중에서 7번째 권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일단 시작은 1866년 에도 막부의 두 번째 조슈 정벌이 실패로 끝나는 지점이다.

 

1864년 교토 금문의 변으로 쇼군이 이끄는 막부는 조슈 번을 조정의 적으로 규정했다. 1차 조슈 정벌이 자그마치 15만 대군을 동원한 막부군의 승리였다면, 두 번째 조슈 정벌은 모리 가문이 이끄는 조슈 번의 승리였다.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과 일왕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권력쟁투가 치열해지고, 계속되는 내전으로 쌀값이 폭등하는 등 막부군이 조슈 번을 상대로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막부군이 판정패 당한 셈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일본 천하를 지배하던 막부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기세가 오른 조슈 번은 정벌이 끝난 다음 해인 18674후회의를 통해 정치적 해결을 도모한다. 그들이 노린 것은 아직 권력기반을 다지지 못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압박하면서 권력분점과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막부 타도였다. 비록 막부 내 반대파들의 준동으로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쇼군 요시노부는 도사 번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가 제안한 대정봉환(천하의 대권을 조정에 반환하는 것)을 심사숙고한 끝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앙숙이었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이 연합한 삿초동맹(1866)이 목표하고 있던 도막 출병의 명분을 무산시키고, 결국 막부가 신정부에서 종래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요시노부가 마냥 바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계책을 성공시킨 것을 보면 말이다.

 

한편, 사쓰마 번 출신의 핵심 브레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협력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와쿠라 도모미(거의 요과 급으로 묘사된다)는 교토 내의 자파 번사들을 동원해서 왕정복고의 쿠데타에 나선다. 사이고의 사주를 받은 사쓰마 번사들이 애도 성내에서 방화와 총기난사를 저지르자, 막부가 진압에 나서면서 비로소 무진전쟁의 서막이 시작된다.

 

일단 교토에서 오사카로 후퇴한 쇼군 요시노부는 병력을 동원해서 교토의 도막파를 상대하게 된다. 서전은 도마 후시미 전투였는데, 신정부군보다 월등한 병력으로 진압에 나선 막부군이 패전을 거듭하면서 서부 일본 전역이 신정부 편에 서게 된다. 기존의 질서를 신봉하던 막부군은 수만 많았지 실제로는 오합지졸의 병세였다. 이에 비해 신정부군의 주력이었던 사쓰마 군단은 병력은 적었지만, 웅번 출신의 병사들로 조직과 훈련에서 막부군을 압도했다.

 

서전에서 기세장악에 성공한 신정부군은 쇼군 요시노부가 도주한 에도 정벌에 나선다. 어디선가 세키가하라의 복수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250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게 도요토미 가문을 중심으로 한 서군이 일패도지했자면, 이번에는 반대로 그 때 패배한 모리 가문과 시마즈 가문을 중심으로 한 삿초동맹군이 복수에 나선 셈이라고나 할까. 동정에 나선 신정부군은 이렇다 할 전투도 없이, 천하의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 쇼군 요시노부의 판단 아래 에도 성에 무혈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막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좌막파(친막부파)의 저항은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우선 에도 인근 보소반도의 조자이 번의 번주 하야시 다다타카는 탈번한 뒤, 유격대로 변신해서 신정부에 저항했다. 보통의 경우 나중에 벌어진 아이즈전쟁처럼 보통의 경우, 번 전체가 저항군으로 변신하는데 조자이 번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였다.

 

원래 도쿠가와 가문의 원류였던 마쓰다이라 가문의 가타모리는 교토 수호를 담당했던 좌막파의 거두였다. 신정부군의 강력한 탄압으로 좌막파들은 동북지방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신군이라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 정도의 역량을 지니고 있던 효웅 다테 도큐간류[독안룡]의 후예가 이끄는 센다이와 가타모리의 아이즈 그리고 쇼나이 번을 상대로 한 아이즈전쟁으로 무진전쟁이 절정에 도달한다.

 

전국을 장악한 신정부군은 대의명분과 병력 그리고 사기에서 저항에 나선 구막부군을 압도했다. 화력에서도 막부군은 신정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쇼나이 번이 선전했지만, 동북전쟁의 맹주인 센다이보다 반란의 중심인 아이즈 타도가 신정부군의 최종 목표로 정해지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속도로 굴러가 버렸다. 그 와중에 아이즈 사족 집단이 무사도 타령을 해가면서도 서구에서 도입한 후장식 최신식 소총과 암스트롱포 같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신정부군에게 옥쇄 돌격하거나 집단자결을 하는 장면에서는 훗날 태평양전쟁에서 벌어질 비극의 전주곡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화에서 전혀 배운 게 없었구나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굽시니스트 선생의 도움으로 무진전쟁 이후, 아이즈전쟁과 막부 잔당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하코다테전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좌막파들이 신정부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북해도까지 독일에 할양할 의향이 있었다는 점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아니 그렇다면, 북해도의 영토적 가치가 그렇게 없었다는 말일까?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전의 향방에 관심이 없었던 서구 열강, 그 중에서도 도이칠란트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하마터면 북해도가 에조란트가 될 뻔했다는 가설은 확실히 쇼킹했다.

 

그 외에도 훗날 일본 해군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는 도고 헤이하치로가 해군 사관으로 등장해서 또 다른 문제적 인간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해적 활동을 동경하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 히데노리가 아이즈전쟁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검신>에도 나오는, 훗날 경찰 후지타 고로로 변신한 신센구미 조장 사이토 하지메도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사실상 무진전쟁의 핵심은 아이즈전쟁이었고 그 후에 치러진 하코다테전쟁은 한줌 남은 좌막파 잔당들의 활극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던 막부의 몰락은 예정된 결과였다. 무엇보다 철저한 계급사회를 추구했던 막부는 체제의 중심이었던 250만 명에 달하는 하급 무사계급의 신분상승이나 자산축적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그들이 존양왕이라는 유교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타도 막부에 나서자 그들을 제압할 방법이 좌막파에겐 전무했다. 무력으로 그들을 압도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재력을 키운 조닌(상인) 계급을 필두로 한 민권의 향상으로 더 이상 막번 시스템은 유효하지 않았다.

 

굽시니시트 작가는 바로 이런 격변의 시기였던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초기의 상황을 특유의 드립과 언어유희를 이용해서 도출해낸다. 게다가 저마다 체제와 군주에 대한 신념 혹은 충성으로 무장한 지사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가 스러지길 반복한다. 그들이 빚어낸 각본 없는 역사 드라마를 짚어낸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또 도서관에 달려가서 다른 시리즈를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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