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기록될 얼간이 대통령은 패배가 확실시된 시점에서도 불복할 태세다. 선거를 통해 얼마나 미국 사회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엉터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전 세계 시민들이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일찍이 말했다지 않은가. 잘못된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마차타고 다니던 시절의 선거 시스템을 고집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슈퍼 라떼 꼰대 올리브 키터리지 여사도 돌아왔다. 남편 헨리를 여읜 교사 출신 라떼 꼰대 올리브. 심지어 그녀가 사는 동네조차도 현대 미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뉴잉글랜드 메인 주다. 아니 어쩌면 올리브 키터리지가 실존 인물이라는 얼간이 대통령에게 투표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원작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서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달랑 한 편의 소설로 때우는 건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이 작가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모두 13개의 연작소설 같은 구성으로 <다시, 올리브>는 이루어져 있다.

 

내가 오늘 새벽에 만난 새 소설의 맛보기는 네 번째 인스톨인 <엄마 없는 아이(Motherless Child)>였다. 스토리는 간단한다. 대도시 뉴욕에 사는 아들 크리스토퍼와 앤 그리고 네 아이들이 올리브의 초청으로 메인 주의 포틀랜드를 찾는다. 뉴욕 방문 3년 만이라고 하는데, 아마 뉴욕 방문 당시 호되게 며느리 맛을 본 올리브는 다시 아들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메인과 뉴욕의 거리 만큼 모자 관계도 썩 원만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이번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도시와 농촌 간의 거리 같다고나 할까.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얼간이 대통령이 대선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캠페인에 열광했다. 이미 세계 제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은 반 세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지 않았던가. 제국으로서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자국 우선주의에 침잠하는 모습이 올리브 여사의 그것에서 느껴졌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올리브 여사는 온 몸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또 한 가지 나의 관심을 끄는 건 핏줄에 대한 집착이다. 크리스와 앤 사이의 자식들은 모두 이부형제들이다. 리틀 헨리와 내털리가 올리브의 진짜 손주인 셈이다. 라떼 꼰대 여사는 리틀 헨리에게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찾는다.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족부학 전문의인 아들과도 사이가 영 껄끄럽다. 자신의 앞에서 서슴지 않고 가슴을 드러내고 모유 수유를 하는 며느리 앤도 영 탐탁지 않다. 이만큼 구 시대의 가치와 정면충돌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또 있을까. 무언가 거대한 것을 통해 사회의 변해가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이렇게 전 세대와 다는 육아방식 같은 소소한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통 방식의 토스트 대신 치리오스인지 뭔지 하는 시리얼 타령을 해댄다. 결국 올리브 여사사 나서서 마트에 가서 아이들이 애타게 찾는 치리오스를 사온다. 이번에는 우유가 떨어졌다. 정말 , 맙소사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제 진짜 크리스 가족을 메인으로 초대한 이유가 등장할 차례다.

 

그것은 바로 전편의 말미에서 만난 잘난체하는 스타일(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하버드대에서 평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역사에 대해 가르친 잭 케니언과 결혼발표다. 참, 잭은 그녀에게 처음에는 '재수 없는 영감탱이'였지 아마. 두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신에게 냉랭했던 어머니의 아들인 크리스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폭발해 버린다. 결국 그것을 위해 자기 가족을 메인으로 부른 게 아니냐고 격렬하게 대꾸질에 나선다. 아마 올리브는 그 순간, 연인 잭에게 S.O.S.를 칠 생각도 했으리라.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몫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아들 크리스 입장에서 볼 때, 무뚝뚝한 엄마 올리브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어 보이진 않았을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올리브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니 말이다. 생전 사용하지 않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나, 어울리지도 않는 스바루 SUV(사실 잭 케니언의 차였다)를 운전하는 모습이 자신이 아는 고루한 시골 할머니의 스타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앤에게 야단 맞는 아들의 모습에서 올리브는 자신이 죽은 남편 헨리에게 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국 아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부인을 얻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가정사가 언제나 그렇듯 별 것도 아닌 다른 차이로 인해 격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세계대전을 앞두고 부부싸움을 하진 않으니까. 대도시 뉴욕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담아주는 종이봉투가 뉴욕 출신 아이들의 눈에는 생경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또 자신은 어머니가 사별하고 나서 외로움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것에 대해 반감을 유감없이 표출한다. 이게 뭔지? 무언가 공평하지 않잖아! 올리브는 사부인이 최근에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앤을 통해 알게 된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사돈관계에서 대소사가 서로 교류되는 한국이었다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질 그런 상황이 아닌가. 모든 게 그렇듯, 이런 일들을 통해 올리브는 앤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다고 해서 극적은 무언가를 이루고 그러는 건 없지만.

 

나머지 열두개 이야기의 출간을 기다리다 못해 슬쩍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는 치팅을 해보았다. 역시나 전편과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위스키를 사러 갔다가 경찰에게 과속딱지를 띠는 74세의 역사학 교수님, 오지라퍼답게 베이비 샤워에 갔다가 엉뚱한 아이를 차에 싣고 오는 에피소드 등등. 역시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싶었다. 드디어 책이 내일 나온다 하니 기대해 본다.


[뱀다리] 잭 케니언과의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서 전편을 찾아 들고 출근했다. HBO 드라마는 어디에 두었더라.


[뱀다리2] 올리브는 전작에서 당시 대통령을 정신지체라고 표현했었다. 그보다 더 쎈 얼간이 대통령은 뭐라고 부를지 궁금해라.

 


어제 <다시, 올리브> 페이퍼를 쓰고 나서 다시 <올리브 키터리지>의 몇 인스톨을 읽어봤다. 십년 전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 휘발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다시 읽으니 주술처럼 그렇게 기억들을 소환되더라. 이런 맛에 재독을 하는 거이지.

 

올리브의 뉴욕행은 재난이었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에서 올리브는 하버드 출신의 잘난 박사 학위를 두 개나 가진 재수 없는 잭 케니언을 만난다. 둘 다 모두 배우자를 잃었고,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진 노인네들이었다.

 

바로 읽고 싶은데 책을 살 수도 없다. 아직 미출간이란다. 그래서 결국 구글링을 해서 원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네 그래.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내러티브에 집중하면서 읽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단속, 원서에는 Arrested라고 되어 있던데... 하긴 체포가 되진 않았으니 단속이 더 맞는 표현인 듯. 속옷 때문에 잭은 계속해서 프리포트를 타령을 하던데 옛 기억을 되살려 보니 프리포트에 아웃렛이 있었지. 이렇게 읽다 보면 책이 수중에 들어오기 전에 제법 읽겠는 걸 그래.

 

, 그리고 올리브는 공화당에 절대 투표하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 잭과 만났을 때 개심한 코카인쟁이에게 잭이 투표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한 걸 보면 말이다. 아마 얼간이 대통령에게도 투표하지 않았겠지. 어디선가 92세 된 미국 할머니가 얼간이 대통령 반대 운동을 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문득 올리브 키터리지가 떠오르더라. 재독하면서 그렇게 기억 속에 잘못 각인된 점들을 교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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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10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베이비 샤워 얘기 정말 재밌어요!! 어쩜 그렇게 베이비 샤워에서 생기는 일에 대한 표현을 잘 하던지!! 그것 말고도 재밌는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올리브가 실존 인물이라면 얼간이 대통령 절대 안 찍고 욕을 해줄 것 같아요. 올리브는 꼰대 같은면서도 젊은 사람보다 더 개방적인 면도 있거든요. (제 의견) 그건 그렇고 요즘 가끔 보이는데, 라떼,,, 어느 경우에 사용하는 단어인가요? ^^;;

레삭매냐 2020-11-10 10:2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제가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읽고
있는데 전임 대통령을 정신지체라고 부르는
걸 보니 ㅋㅋㅋ

‘라떼‘는 꼰대들이 ˝나 때는 말이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희화화한 거라네요.
저도 직장 동료들에게 한 수 배웠네요.

단발머리 2020-11-10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이웃 분 서재에서 ‘올리브 키터리지‘ 여태 안 읽은 사람 저 뿐이라는 소식에 좀 슬펐는데 ㅎㅎㅎ 레삭매냐님 방에서도 <올리브 키터리지> 만나니, 이 책은 저에게 운명인가 봅니다.
차근차근 따라가려 해도 어마무시 읽을 책이 많네요. 레삭매냐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0-11-10 13:26   좋아요 0 | URL
아니 여적... 올리브 키터리지를 안 읽으신
분이 다 있다니 ㅋㅋㅋ

저희 달궁 모임에서 예전에 이 책으로 독
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희 멤버 중
의 한 분이 당대 미국 사회를 비유한 작품
이라는 해박한 분석에 격렬하게 동의했던
시절이 있었습죠.

이 자리를 빌어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랄한 사회비판을 안고
돌아왔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