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7 - 제1부 대망 7 불타는 흙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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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가문의 운명을 걸고 무모하게 나섰던 카이의 호랑이 타케다 신겐과의 대결은 이에야스군의 참패로 끝났다. 타케다가 작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시한 교토 상경작전에 걸림돌이 되는 도쿠가와 부대를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거둔 대승의 승기를 몰아 하마마츠를 공격했다면 천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누구던가. 13년이라는 기나긴 인질 생활을 하면서도 천하를 품겠다는 야망의 발톱을 감추고 때를 노리던 기회주의자가 아니던가. 그는 전장에서 수많은 가신들이 주군을 대신해서 목숨을 잃는 동안, 타케다군에게 패주해서 쫓기던 와중에 마상에서 똥을 싸고서도 볶은 된장이라며 퉁을 치던 노련한 인물이었다.

 

사방의 적으로 둘러싸인 오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도울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 자신이 살기도 바쁜 마당에 누굴 돌아본단 말인가. 그러던 차에 타케다 신겐의 병사(소설에서는 적군의 총포 암살로 묘사된다)는 도쿠가와 가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카게무샤를 동원해서 주군의 죽음을 교묘하게 감춘 타케다 군은 대승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전장에서 자신들의 영지인 카이/시나노로 철수한다.

 

패배의 상처를 보듬고, 신겐의 가독을 승계한 카츠요리의 진격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이에야스는 이번에는 내부로부터의 적과 싸워야 했다. 주범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정실로 후계자 노부야스의 생모였던 츠키야마(세나히메)였다. 오다의 부인 노히메나 히로타다의 오다이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던(어쩌면 시대를 앞서 나간 여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츠키야마 부인은 이에야스의 가신 오가 야시로는 물론이고 카이에서 파견한 스파이 의사 겐케이와 연달아 통정하면서 마츠다이라 가문의 뿌리를 뒤흔든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츠키야마는 당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장부가 아니었을까. 일본의 센코쿠 시대의 봉건적 질서는 여자들에게 무한한 희생을 요구했다. 성주의 정책에 따라 원하지도 않는 적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신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자체가 인질이었다. 치열한 농성전에서 패하면 원하지도 않는 자결을 강요당했다. 그런 시절에 남편의 부하와 바람을 피우고, 더 나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의 파멸을 획책하는 그런 센코쿠 팜므 파탈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녀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럴 거면 이에야스가 와이프에게 잘했어야지.

 

주군의 부인과 간통한 남자 오가 야시로는 이제는 아예 대놓고 카이와 내통해서 마츠다이라 가문의 거성인 오카자키를 타케다 카츠요리에게 넘기겠다는 음모를 세운다. 아버지의 역량에 못미치는 노부야스의 결정으로 카이의 스파이 겐케이는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카이와의 대결을 앞두고 철석같은 단결을 중시하는 오카자키에 이런 이질적인 요소가 등장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절약을 강조하면 주군부터 호의호식하지 않고 내정에 치중하고,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던 이에야스였지만, 마누라 복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후계자인 노부야스 그리고 카메히메를 낳은 츠키야마가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할 함정을 파고 있을 줄이야.

 

이야기의 다음 무대는 아사이 가문이 다스리는 오이의 오다니 성 전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인 오이치를 부인으로 삼은 아사이 나가마사는 오다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아버지 히사마사 때문에 천하의 대세를 그르치고 그놈의 의리 때문에 가문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그런 결정을 내린다. 오다와의 대결. 오이치의 오빠인 노부나가는 당연히 여동생과 세 명의 조카들을 구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아사이 부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미 정벌의 대업을 맡은 키노시타 히데요시에게 혈육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주군 오다를 위해 언제나 사지를 마다하지 않고 뛰어든 히데요시는 어느새 5만 석의 당당한 다이묘가 되었다. 그는 절세미인이라는 오이치를 사모하는 마음에서였을까, 기교를 발휘해서 무모한 결사항전을 외치는 나가마사를 설득해서 오이치 모녀들을 사지에서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에치젠의 아사쿠라에 이어 오미의 아사이도 제압한 오다 노부나가는 명실상부한 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어진 논공행상에서 오다는 일개 아시가루의 아들인 히데요시를 오미의 영지를 그대로 계승하게 해서 자그마치 18만 석 성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오이치도 부탁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그의 출세를 시기하던 오다 일족의 견제와 질시를 받게 될 것이라며 정중하게 사양한다.

 

어쩌면 오다의 뒤를 이어 센코쿠 시대를 마감하고 관백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히데요시는 이미 그 때부터 큰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동안 오다와 도쿠가와 양웅으로 전개되던 줄거리에 히데요시라는 효웅이 추가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한편, 카이의 카츠요리는 도쿠가와를 상대로 지속적인 전쟁을 도발한다. 나가시노의 오쿠다이라 가문은 타케다 군을 안심시키기 위해 성주의 막내아들 센마루와 작은 성주의 가짜 부인 오후까지 보낸 뒤, 도쿠가와에게 귀순한다. 죽은 아버지의 압박에 시달리던 카츠요리는 사람을 살리는 전쟁이 아닌 인질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죽음의 전쟁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야스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카츠요리의 아버지 신겐에게 대패를 당하고, 전쟁의 실질을 배웠다면 역설적으로 대승을 거둔 타케다 가문의 카츠요리는 예전에 준비도 갖추지 않은 채 운명을 시험해 보겠다고 미숙한 상태로 전투에 나선 이에야스의 길을 걷는다.

 

기세 좋게 15천의 군세를 몰아 하마마츠 공략에 나선 카츠요리 부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도쿠가와 군의 농성전을 상대하게 된다.

 

타케다 신겐의 뒤를 이은 후계자 카츠요리의 한계는 분명했다.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자존심만 앞세울 게 아니라, 쓰디쓴 가신의 고언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방을 적으로 만든 신겐의 정책은 전국을 제패할 수 있는 무력이 뒷받침되고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만 가능했다. 뛰어난 리더였던 신겐이 사망하자, 사방의 적들이 카이 타도를 외치면서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젊은 군주가 타개할 수가 있었을까. 카이 24무장 중의 한 명인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마사카게가 젊은 주군에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의 후퇴는 전혀 수치가 아니라고 하면서 카츠요리를 설득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버지 신겐처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때를 기다릴 줄 몰랐던 것이 카츠요리의 결정적 패착이었다.

 

이번 편에서도 역시나 야마오카 소하치 작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비로소 수십 년간의 전쟁 상태를 외부의 힘으로 강제로 끝내게 된 일본 사회에 도래한 평화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그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가 누구였더라? 일본의 중세나 현대에 벌어진 전쟁 모두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권력자들 혹은 당대 실력자들이 벌인 끝없는 전쟁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사이 가문의 영주들인 히사마사나 나가마사도 명분도 없는 이미 멸문한 아사쿠라와의 의리 타령을 하다가 백성들과 가족들을 전화 속에 끌어넣지 않았던가. 영주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킨답시고 배를 가르면 그만이었지만, 나머지 백성들은 성을 탈취한 적군의 약탈과 살인 방화를 그대로 감당해내야 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평화를 향한 염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전에 전쟁에 책임이 있는 이들의 사죄 대신 부처님의 신벌 타령이나 전쟁의 업화라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 현상에 대한 일상적 관찰보다는 원인과 이유를 도출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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