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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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술라>를 읽고 나서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작년엔가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꼭 읽고 싶어서. 어느 순간, 토니 모리슨의 스타일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써둔 문장이다. 달궁 독서모임에서 <술라>를 다시 만났었는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재즈><빌러비드>로 독서모임을 했다면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전자는 너무 비극적인 서사 때문에 그리고 후자는 삼 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쉽지 않았으리라.

 

계속 미루고 있던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를 다 읽고 나서, 완독하지 못하고 있던 <재즈>를 마저 읽었다. 그전에 읽은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영문 서머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5장 분량의 서머리를 읽다 보니 주인공 조 트레이스와 바이올렛/바이올런트 그리고 도카스 맨프레드 등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망각 속에서 소환되었다.

 

신나는 파티장에서 늙은 연인의 총에 맞아 죽은 18세 소녀 도카스 맨프레드의 장례식에 등장한 미용사 바이올렛 트레이스가 벌인 난투극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소설의 초반을 장식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하나의 미스터리로 작용한다. 어떻게 50살 먹은 조가 도카스와 희대의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조는 왜 처벌받지 않았지? 이런 사건들이 줄지어 벌어지는 데도 조와 바이올렛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그런 점에서 보면 남녀간의 결혼은 우리의 상상 저 너머에 고고하게 버틴 그 무엇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2611일이다. 정확하게 역사에 재즈 에이지(jazz age)’란 이름으로 기록된 광란의 20년대를 관통하는 시점이다. 6년 전에 통과된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하는 경제 활황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하는 흥겨운 재즈 리듬에 맞춰 소설은 전개된다. 그런데 조와 도카스의 불륜은 고작 3개월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남녀 관계에 있어 핑퐁게임 같은 비결을 터득한 도카스는 늙은 조와의 관계를 손절하고, 젊고 새로운 애인 액튼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비극의 원인이었을까.

 

토니 모리슨은 현재에서 출발해서 노예제도가 성행하던 19세기 중반까지 바이올렛과 조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예언하는가 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 작가의 소설 속에서 과거라는 시점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 오늘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는 과거를 먼저 구성하고 거기에서부터 현재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바이올렛의 할머니 트루벨은 부잣집 규수 베라 루이스 아씨 밑에서 일하는 노예다. 베라 루이스는 흑인 노예와 불장난 끝에 집안에 커다란 수치를 안겨 준다. 수치의 결과가 바로 골든 그레이였다. 자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끝장내기 위해 길을 나선 골든 그레이는 길에서 만난 야생의 흑인 처녀/임신부의 출산을 돕는다. 그레이가 우여곡절 끝에 만난 헨리 레스토리는 헌터스 헌터라 불리는 유능한 사냥꾼이다. 와일드가 낳은 아이가 바로 도카스에게 총탄을 날린 조 트레이스였다. 뜨내기 생활을 하던 조가 버지니아의 팔레스타인 목화밭에서 만난 배필이 바로 트루벨의 손녀 바이올렛이다.

 

장례식 사건 이후 이웃에게 바이올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바이올렛 삼대에 걸친 서사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절묘한 전개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어울리는 관계의 연속성에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적 도라스의 정체를 알게 된 바이올런트는 이제는 죽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카스 맨프레드의 실체를 찾아 나선다.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도카스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 앨리스가 사는 할렘으로 삶의 공간을 옮긴다.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조나 바이올런트와는 달리, 화려한 도시의 삶에 완벽하게 매료된 도카스. 그런 도카스에게 아버지 뻘인 조와의 관계는 그저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결말 부분에서 도카스의 친구 펠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와 바이올렛에게 안식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나는 여전히 재즈에 대해 잘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몇 개의 재즈 넘버들이 있긴 하지만, 무질서해 보이는 애드립 연주의 참맛을 모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하고 흥청거리는 미국 젊은이들이 몸을 맡긴 분위기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기성세대들은 그런 난잡해 보이는 음악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재즈 에이지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등장한 로큰롤에 대해서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적대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마이너 장르가 되어 소수의 지지자들이나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재즈>를 읽으면서 지난 가을에 멈춘 지점이 바로 조의 어머니 와일드와 골든 그레이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바이올런트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와일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무래도 소화하기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 지점을 꾸역꾸역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고 결국 몇 달 동안 포기하고 있다가 서머리의 도움으로 원점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실을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는 화자가 누구일까러눈 점에 대해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역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와 도카스의 관계가 그랬고, 죽은 소녀를 이해하기 위해 앨리스를 찾아 어린 소녀 생전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수고하는 바이올런트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인 조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언제 삶이 그리고 사랑이 만만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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